노동과 민중

국립오페라단 일방 해고 저지 투쟁..

녹색세상 2009. 3. 8. 18:54
 

“정말 상임단원 되는 줄 알았어요.”


2007년 12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라보엠 공연 중 불이 났다. 처음엔 배우가 실수로 불을 냈다는 말이 돌았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은 다치고 유독가스도 마셨다. 그러나 단원들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오페라단 규정상 그들은 산재보험도 안 되는 연습생에 불과했다. “공연하다 다치고 연기 마시고 정신이 없었죠. 병원 가서 약 바른 게 다예요. 무엇보다 목이 중요한데 화기(火氣)를 다 마시고도 처방을 못 받았죠.” 합창단 5년차 이모 씨의 말이다. “불난 뒤 상임화 얘기가 쏙 들어갔어요. 고용불안이 밀려 왔어요.”

 

  ▲ 허울 좋은 예술인에서 문화예술노동자로. (사진: 참세상 안보영 기자)  


조남은 공공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장은 “2002년 창단부터 해마다 연말 연봉협상땐 꼭 상임화 문제가 등장했다”고 했다. 국립오페라단은 합창단 첫 모집 공고에 상설화를 확약했고 좀만 열심히 하면 상임화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공연 횟수는 해마다 늘었고 호평도 받았다. 2007년 대구 국제오페라축제에서 유례없이 합창단이 대상을 받았다.

 


당시 언론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된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올 무대에 올린 작품 ‘라 트라비아타’에서 활력 넘치는 정확한 가창으로 극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작품성을 드높였다”며 유례없는 오페라 대상이란 극찬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러나 상임화는 소문뿐이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속상했어요. 우리는 정말 실력 있는 합창단인데....” 1년 뒤 합창단은 연말 공연이 한창이던 2008년 12월 말 합창단 해산을 통보 받았다. 그것도 구두로. 12월30일 마지막 공연 뒤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이소영 단장은 우리 자존심을 짓밟았다.”


“월급요? 70만 원 받아요. 거기에 공연수당이 붙죠. 규정상 월, 수, 금 나와서 하루 3시간만 연습하면 그만이에요. 그러나 실제론 몇 배나 더 많은 시간을 연습해요. ‘국립’오페라합창단이잖아요. ” 조남은 지부장의 말이다. 지역공연 갈 때 오가는 시간과 체류시간은 모두 무료봉사다. 보상도 없다. “어려운 조건에서 우리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공연해왔어요. 이소영 단장이 일방 해고한 사실에 화가 났어요. 이렇게 농성하는 건 예술적 자존심을 짓밟혔기 때문이예요.” 소프라노 이윤아씨의 말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지난 10일 교섭에서 “일방 해고통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장은 지난해 11월 28일 면담에 아무 권한도 없는 김헌진 사무국장 내정자만 보냈다. 김 국장은 합창단의 입장을 단장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 2002년 국립오페라단합창단 첫 모집공고에 언급된 ‘상설화’ 계획. (사진: 참세상 안보영 기자) 


그 뒤에도 단장은 면담을 차일피일 미뤘고 지난 1월 8일 이소영 단장과 처음 마주 앉았다. “공연 연습 때 얼굴 살짝 비춘 뒤 처음이었다. 부임한지 6개월 만에. 단장은 자기 얘기만 10여분 하고 나가버렸어요.” 옆에서 조남은 지부장이 “아니 우리 질문에 딱 3개 답했다”고 바로 잡았다. 그 뒤 단원들은 공공노조에 들어와 정식 교섭을 요청했다. 지난 3일 1차 교섭에서 노조가 준비한 기본협약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교섭 다음날 집으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왔다. 전날 교섭에선 어떤 언급도 없었는데. 2월 3일자 소인이 찍혀 있었다.


2월 10일 2차 교섭에선 해고 공방이 오갔다. 국립오페라단은 앞으로 ‘합창’은 국립합창단과 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국립합창단은 콘서트 합창이 전문이고 오페라합창은 우리가 유일하다고 맞섰다. 그동안 합창단 인건비를 경상비로 지출해왔기에 불법이라고 해산해야 한다는 사측의 주장에 노조는 규정을 바꿀 문제이지 해고할 이유가 아니라고 맞섰다.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이소영 단장이 타협안을 제시했다. “정부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 창출 목적 아래 모기업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 거기서 상임으로 일하도록 적극 돕겠다. 4대 보험도 된다. 이후 우리와 공연계약을 하면 지금처럼 공연할 수 있다”고 했다. 노조는 “해고를 전제로 한 교섭이 어디 있느냐, 해고를 철회한 뒤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단원들은 “기업체 이름도 밝히지 않았는데 뭘 믿고 해고를 받아들이겠느냐”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10일 저녁부터 시작된 오페라하우스 농성이 만 하루를 지났지만 단원들은 무기한 농성을 예고했다.


지난해 7월 이소영 오페라단장이 취임 뒤 많은 변화가 왔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배우와 지휘자, 미술감독 등 상임단원들은 국립오페라단에서 사라졌다. 공연 때마다 캐스팅해서 사람이 계속 바뀐다. 정은숙 전 단장 때 있던 팀장은 다 교체됐다. 합창단 해고 전에 지휘자를 먼저 잘랐다. 새 단장의 머리 속 ‘문화예술’은 어떤 것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제 그들은 거리 공연으로 투쟁의 현장에서 연대하며 허울 좋은 문화예술인에서 예술노동자임을 자각하며 싸우고 있다. ‘무대에 서서 공연하니 기분 좋다’는 그들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람을 짓밟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요.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기량을 헌신짝처럼 차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세상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