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

퇴임하는 경북대의대 정신과 강병조 교수님에게

녹색세상 2009. 4. 23. 15:01
 

강병조 교수님,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시샘하더니 초여름 날씨로 둔갑해 고생시키다 이제야 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황사가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죽었다 깨어난다 할지라도 손댈 마음이 전혀 없는 조선일보를 정말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일보를 쳐다보면 석 달 열흘 재수가 없어 아예 상종을 하지 않고 삽니다. 정년퇴임한 ‘경북대의대 정신과 강병조 교수, 제자들이 모아준 돈을 북한의 결핵 어린이 돕기에 기증’이란 내용의 기사가 제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좋은 일임에 분명하지만 저는 박수를 보내지 않은 게 아니라 당장 달려가 멱살을 잡고 싶은 속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정신과의사니 이런 저를 ‘성격장애’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가슴에 맺힌 악연이 있다고 기사에 나온 강병조 교수님의 웃는 사진을 보고 더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은 수양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 근로복지공단과 행정 소송을 하던 중 법원의 사실조회 명령에 상근자문의사가 늑장을 부려 침묵 항의를 하던 장면.

 

2006년 10월 어느 날 근로복지공단 대구서부지사에서 ‘경북대병원 특진’ 통보를 받고 뇌파 검사를 포함한 모든 정신과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결과와 몇 차례 상담을 한 담당 김×× 교수는 주치의사와 비슷한 “1년 정도 경과를 지켜본 후 종결 여부를 판단하라”는 내용의 의학 소견을 적어 회신을 했습니다. 아주 친절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좋은 정신과의사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장기요양 환자의 종결 여부를 결정하는 자문의협의회에서 같은 대학의 같은 과 동료교수의 의학 견해를 강병조 교수님이 단 한 줄로 뒤집어 버린 걸 기억하시는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단 결과에 의문이 있으면 ‘다시 검사하자’고 해야지 단 5분도 안 되는 면담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강병조 교수를 비롯한 자문의사들이 딱 한 줄로 쓴 자문 소견을 바탕으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종결’을 시켜 계속 치료받아야 하는 저로서는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 후 근로복지공단과 경북대병원을 오가는 상복 시위를 했다는 소문이 경북대병원에 파다했으니 모르지 않으실 겁니다. 특히 종일 진료하는 날 ‘경북대병원 특진 결과 번복한 강병조 교수’의 답변을 요구한다며 침묵시위를 했으니 무슨 ×망신이었습니까? 진료실 밖에서 ‘강병조’란 이름을 적은 팻말 앞에 망자에게 하는 재배를 하기도 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시더군요.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으로 봤는지, 속은 상하지만 삶의 연륜으로 삭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상근자문의사인 박동성 박사는 이런 저를 보고 ‘미친 놈’이라고 했다가 ‘내가 미쳤다는 의학적인 근거를 대라’며 항의를 받기도 했답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상복을 입고 절 두 번을 했으니 환갑 넘은 분이 망신살이 뻗쳤지요. 그 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지루한 행정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송 도중 법원의 사실조회에 아주 간략하게 답변을 보내 약물의 부작용만 부각시켜 정신과 치료의 기본인 ‘상담과 약물치료’를 부정하는 내용을 보내셨더군요. 아무리 당사자의 견해지만 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판에 익숙지 않은 연세의 분이 입력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강병조 교수는 정신의학을 연구하는 학자요 예비의사를 지도하는 교수에다 권위 있는 국립경북대병원 정신과 의사인데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시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불면증에 시달려 2~3주에 한 번 정도는 주치의사를 찾아가곤 합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고통에 시달리는데 강병조 교수님이 일조를 하셨으니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군요. 정신과 의사란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저를 보고 ‘반사회성 성격 장애’라고 할지 모르나 철이 들면서부터 지금까지 먼저 남을 때려본 적이 없고, 특히 약자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권력과 자본을 향한 투쟁은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모르기에 대구 바닥에서 얼굴 뵐 날이 있을 줄 압니다. 지나가다 뵈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교회에 난입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열심히 살아간 후배가 끌려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몇 년 지나 그 때 현장을 지휘했던 대공과의 권×× 계장을 상동시장 부근에서 만나 ‘달구벌교회 이동기 사건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사색이 되기에 ‘권 계장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볼 때 마다 멀리서 도망가기 바쁘기에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명색이 남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연구하다 퇴임한 분이 그런 치사한 짓은 하지 않을 줄 압니다. 제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유는 동업자인 동료 교수의 소견을 한 줄로 엎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기 때문이지 폭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혹여 항의를 하더라도 연세 드신 분이니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년퇴직하면 건강을 상하는 분들이 많던데 건강 잃지 않고 밝은 얼굴로 뵐 날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