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달비골의 벌목 저지 싸움이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앞산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허탈과 좌절에 빠졌을 줄 압니다. 저는 넋 나간 사람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헤맸습니다. 상수리나무 위에서 내려온 후 일주일 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진이 빠지고 몸이 축 쳐져 본 적은 없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경찰서로 출두한 사건 역시 준비한 방향과 엉뚱한 곳으로 일이 벌어지면서 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딴에는 미리 연락하고 최악의 경우 면회 연락책이라도 준비된 줄 알았는데 아니라 더 놀랐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국립호텔 가기 5분 전 문제가 풀려 검찰청 구치감에서 나오면서 ‘맞다, 우린 졌으나 아름다운 패배’라는 느낌이 불현듯 들면서 앞산터널 반대 싸움도 한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방향 전환을 위해 현실을 인정하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형편에 이 정도 싸웠다는 속내를 일일이 안다면 기절초풍할 일’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모임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대구지역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싸우고, 벌목 저지에 그 정도 많은 사람들을 동원한 것은 대구의 상징인 ‘앞산지키기’란 커다란 의미와 함께 지금까지 앞산꼭지들이 끈질기게 버틴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저를 아는 분들이 멀리서 손 흔들다 간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왜 그냥 가느냐’고 물었더니 ‘미안해서 그런다’는 말을 대부분 하더군요.
‘나무 위 농성’을 제가 85일 넘게 넘겼다는 것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뛰어든 저로서는 큰일이었습니다. 제 몸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치의사인 후배의 만류를 뿌리쳐 가면서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라간 것도 어쩌면 앞 뒤 재지 않고 달려든 단순한 성격도 한 몫을 했죠.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하면서 싸움을 준비하고 '나무 위 농성'을 한 것과 전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다소 개인의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밖에 없겠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점검과 장기 투쟁에 대비한 미비점을 중점적으로 적을 생각입니다. 모자라고 실수한 것을 기록하고 점검해야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보다 힘차고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차별에 대해서는 끝까지 저항해야 하지만 서로의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분모를 넓혀가지 않으면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가 조금만 약해 보이면 어느 순간 사정없이 짓밟고 마구 대하는 사람을 보지만 그런 사람이 오래가지 못하다는 것도 우린 잘 알고 수 없이 겪어 왔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질책을 하되 사소한 차이는 서로 안고 간다면 또 다른 싸움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는 힘이 매우 크리라 봅니다. 일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기에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소중한 싸움에 귀한 도구로 쓰여 져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달비골 배회를 끝내고 적응할 수 있도록 걱정해 주신 동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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