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달비골 ‘나무 위 농성’ 100일을 보내면서

녹색세상 2009. 3. 24. 17:41

 

 

오늘이 앞산터널 반대 ‘나무 위 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째입니다. 온 종일 머리만 복잡해 오지도 않는 낮잠을 자다 깨기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농성을 하면서 낮잠을 거의 자지 않았는데 달비골의 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간 3월 19일 부터 그만 생활리듬이 깨져 수시로 낮잠이 쏟아지곤 합니다. 의욕을 잃은 탓인지 무엇을 해도 신명도 나지 않고 그냥 시간만 보내는 게을러 진 저를 돌아봅니다. 작년 12월 14일 엄동설한에 농성을 시작해 100일을 넘겼으니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농성이라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작은 힘이나마 모아 100일을 버텼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넘기는데 탈은 없을지 걱정도 많이 했지만 희한하게도 몸이 적응을 해 농성으로 인해 건강을 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죠. 2월중으로 벌목을 하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2월 24일부터 시작된 태영건설의 일방적인 달비골 벌목작업은 예상치 못한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태영건설이 급기야 용역깡패까지 투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체인톱 하나에 건장한 체격의 용병 7~8명이 에워싸는 등 희한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해 돈에 눈이 먼 천박하기 그지없는 건설자본의 발악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상식은 저 멀리 가고, 조상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고 무주 덕유산국립공원만큼이나 많은 생물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달비골은 합법의 탈을 쓴 폭력만 난무한 무법천지로 변하고 말았죠. 그 와중에 체인톱에 주민의 얼굴과 코가 찢어져 쉰 바늘이나 꿰매는 사고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태영건설은 오직 나무 자르기에만 급급해 얼마나 저급한지 스스로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주민 한 분이 실신해 119구급차에 실려 가고, 앞산꼭지 한 명이 용병들에 떠밀려 돌 더미에 넘어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되자 대구시 관계자가 현장에 나왔습니다. 사고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자 여론 악화를 걱정해 벌목 작업 중단을 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2주 가량 벌목작업이 중단되어 휴식도 취하면서 힘을 비축하는가 싶더니 전경 1개 중대에다 여경 2개 소대가 투입되자 주민 대표들은 아파트 내 방송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등 꼬리를 바짝 내리고 말았습니다. 보나마나 적당히 달래가면서 겁을 준데다 달비골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경찰 병력이 깔려 있으니 얼어붙고 만 것이죠.

 

 

벌목은 용역깡패 대신 경찰 병력의 보호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말았습니다. 변호사와 경찰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법적 근거를 물었더니 ‘시설물 보호’와 ‘업무 방해’와 관련해 협조 요청을 하면 병력을 투입하도록 관련 조항이 있다고 하네요. 이해 당사자인 주민들의 생존보다 자본의 이익이 우선인 웃기지도 않는 법이지만 ‘합법’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한나라당 독점인 전진기지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줄 알면서도 뛰어든 싸움이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네요.

 

주민들이 처음부터 벌목저지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예 포기라도 했으련만 잘 막다가 아파트 운영위원이란 자들이 주민들 발목을 잡고 나왔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죠. 나무를 자식처럼 아끼는 주민들은 애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합니다. 어렵게 벌어 겨우 장만한 자그만 아파트지만 공기 맑고 살기 좋다고 이사 온 이곳에서 이제 소음에 시달리고 굴뚝에 코 박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런 답도 얻지 않고 물러섰으니 주민들의 배반자들임에 분명합니다. 싸울 자신 없으면 가만있기라도 하면 될 텐데 발목을 잡았으니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남의 뒤통수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사정없이 치고 말았습니다. 역시 모든 싸움은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 분열이나 배신자 때문에 깨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죠. 개인적으로 특정한 한 문제를 놓고 이렇게 오래도록 싸움에 매달려 보기는 처음입니다. 비정규직 철폐 문제로 끈질기게 싸운 이랜드노조나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기륭전자 노동조합이 있긴 하지만, 이해관계가 아닌 문제로 싸우긴 처음이고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질 줄 알고 뛰어든 싸움에 깨질 각오하고 상징인 ‘나무 위 농성’에 달려들었지만 막판에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허탈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한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 온도가 많이 떨어지는 골 초입에서 농성을 하며 견딜 수 있을지 걱정도 하고, 주치의사인 후배는 ‘형님의 선택이라 존중하지만 의사로서 말리지 않을 수 없다’며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지내왔으니 감사한 일이죠. ‘끝이 좋아야 만사가 좋다’는 말처럼 마지막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싸움에서 제가 한 역할을 음악에 비유한다면 끈질기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리를 내려는 앞산꼭지라는 교향악단의 상징적인 역할이라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기간이기도 합니다. 지역에서 똑똑하고 머리 잘 돌아가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절하고 기도하던 종교인들마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셈에 어두운 사람들이 남아 저항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것이긴 하지만,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같은 준비해 놓은 것을 해 보지도 못하고 실질적인 싸움을 접어야 하니 속이 뒤집어 집니다.

 

작년 10월 용두골에서 벌목작업이 시작되면서 이 싸움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밀린 빚 갈이 하는 심정으로 매달렸는데, ‘나무 위 농성’ 100일 중 90일 가까이 맡았으니 얼추 빚 갈이는 한 것 같은데 잘려 나간 아름드리나무를 보노라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체인톱 엔진소리에 신경만 곤두서고 머리가 텅 비어 있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조금만 눈길을 돌려 붕괴된 북한의 기반시설 공사에 뛰어들면 향후 25~30여 년의 물량은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개념 없는 권력과 전망 없이 코앞의 것만 챙기려는 천박한 건설자본은 개발이 아닌 파괴로 돈을 벌려 하니 갑갑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자본도 살아남을 수 있건만 남한사회의 자본은 그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미친 권력을 갈아엎지 않는 한 계속 이런 짓거리를 보고 살아야 하니 더 분통이 터지네요. 갈수록 극심해 지는 기상이변에다 난개발로 인해 태풍의 이동 경로조차 바뀐 지금 또 삽질로 21세기 국가경영을 하려는 웃지 못 할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서글플 뿐입니다. 갈수록 고층 아파트가 늘어 바람 길이 다 막혀 대구의 열섬 현상으로 여름을 보내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삽질을 해대는 권력과 이때 마지막 단물이라도 빨자면서 발악하는 건설자본을 보노라면 갑갑하기 그지없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구판 경부운하인 앞산터널 공사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려고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길 내는데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은 빚내는 것인데 그 미친 짓을 하면서도 ‘개발’이란 뻔한 거짓말을 해대는 저들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죠. 다 부서지고 파괴된 환경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준다고 생각하니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앞산을 지키는 우리들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지만 자식과 조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