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을 지키려던 한 겨울의 몸부림을 떠 올리며

녹색세상 2009. 4. 10. 15:29
 

앞산을 지키기 위해 겨우내 달비골 초입의 상수리나무 위에서 보냈습니다. 골 안 쪽 보다 들머리가 바람이 더 불어 체감 온도가 많이 떨어지니 지내기 힘들죠. 자동자 소음까지 겹치니 신경이 곤두설 때도 많습니다. 인근 장미아파트 7층 높이와 비슷하니 약 18미터 정도가 되니 바람이 여간 부는 게 아니더군요. 나무 위 농성을 ‘내가 하겠다’고 뱉어 놓고는 약속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적응 훈련을 하다 감기 몸살로 고생을 하고, 추운데 자고나니 근육이 긴장되어 허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러다 약속 못 지키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앞서더군요. 

 

 

가장 싫어하는 게 약속 안 지키는 것인데 내가 못 지킨다면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이만저만 머리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누구보다 제 몸의 상태를 잘 아는 후배가 “형님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주치의사로서 한 겨울 농성을 말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하니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안면비대칭이 와 안면마비는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괜찮아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애먹이던 감기는 농성 시작 전 일주일 무렵에 떨어지고 몸도 괜찮아졌습니다. 제가 먼저 ‘3주 정도 농성은 책임지겠다’고 하자 다음 타자가 나오는 등 막힌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막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누군가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앞산터널 저지 싸움의 상징이긴 하지만 개인이 돋보이는 것보다 ‘전체 그림을 좋게 가져가야겠다.’는 판단에 오랜 동지이자 선배인 ‘오규섭 목사를 먼저 올라가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차피 하는 몸빵인데 자기 얼굴 드러내려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전체를 고민하는 게 올바른 것 같아 지금까지 지내온 인연과 여러 가지를 감안한 끝에 판단을 내렸습니다. 연락을 취하고 전체 일정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실장을 맡기 힘든 앞산꼭지들이 맡는 것을 보면서 이왕 시작한 거 ‘이 싸움 끝낼 때 까지 하겠다’는 답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의 말씀이 이럴 때 하는 것이란 생각에 시원하게 응답을 했습니다. 대신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내려온다’는 조건은 분명히 달았습니다. 우려하던 벌목이 2월 24일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나무 위에서 보고 있자니 속이 상할 수 밖에 없었죠. 이래저래 연락을 해 새벽 추위를 무릅쓰고 벌목 저지 싸움에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해 주었습니다. 한 가지 속 상한 게 있다면 전부 나이든 30대 중후반에서 40대들 뿐이고 청년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닌 것에 대한 저항’을 젊은이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진보정당의 학생당원들 조차 없었으니 같은 구성원인 노땅으로서 더 속이 상하더군요.

 

 

주민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막을 재주가 없는 싸움입니다. 대구 지역의 여건상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의 동원 능력이 뻔해 달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그렇다고 언론을 크게 타는 것도 아니고, 먹물들이 나서서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현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죠. 그렇지만 상징인 나무 위 농성을 끝까지 하겠다고 올라간 당자사로서 힘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보니 허탈감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벌목 저지 싸움이 밀리고 나서 일주일을 술에 절어 살면서 달비골을 배회하다 ‘우리 여건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하자 제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지키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저는 몸을 던져보았습니다. 대구 인근에서 생태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고 계절의 변화가 선명한 달비골, 도심 쪽을 쳐다보면 뿌연 하늘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지만 달비골 안으로 고개만 돌리면 선명하게 별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공기가 맑은지 알 수 있지요. 아침마다 날아와 마치 ‘같이 살아요’라는 소리를 하듯이 지저귀는 이름 모를 수 많은 새들, 골 곳곳에는 온갖 이름 모를 식물들이 서식하는 이 곳을 단 몇 분의 편리를 위해 파괴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임에 분명합니다.

 

개발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해 전형적인 정경유착인 ‘민투사업’으로 온갖 특혜를 줘 가면서, 건설자본의 아가리만 즐겁게 할 뿐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광역시 가운데 꼴찌인 대구의 엉터리 행정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앞산터널 저지 싸움은 졌다고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앞산꼭지들의 끈질긴 저항은 ‘질긴 놈이 무섭다’는 말이 맞다는 말을 새삼 떠 올리게 하고, 이번 싸움을 냉정히 평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면 다른 싸움을 하는데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긴 했으나 이는 ‘아름다운 패배’라고 보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싸움에 대비한다면 큰 성과라고 봅니다. 일주일 넘게 나이 쉰이 된 늙다리가 방황한 것을 남들이 알면 뭐라 할지 모르나 쓸데없이 헤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고민이었기에 다시 설 수 있다고 봅니다.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은 얼굴 좀 팔다 가 버렸을 때 달비골 곳곳을 찾아 어떤 생물이 사는지 보고 기록한 어쩌면 멍청할 정도로 셈이 어두운 사람들이 끝까지 남은 것을 보면서 말과 글로 사는 인간들 보다 ‘몸으로 사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벌목 저지 싸움에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을 데리고 와 메가폰을 들고 다니게 하면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도록 한 교사인 하외숙 꼭지, 무참히 잘린 숲은 보면서 허탈해 그냥 울기만 하던 백은주 꼭지,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한 장면이라도 더 찍으려고 몸 사리지 않고 달려들어 영상을 찍은 이경희 꼭지를 보면서 희망을 잃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의 각종 이야기가 신화이듯이 인간들의 삶 역시 신화와 같다고 믿습니다.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생명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면 분명 밝은 날이 오리라 봅니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 해 노력하고 불의한 것에 대해 싸운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겠지요. ‘자연과 생명’이라는 화두를 안고 싸울 수 있어 기쁘고, 그런 선한 싸움의 앞에 설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제 새로운 싸움이 주어질 때를 위해 정리하고 대비하려 합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듯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