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부터 일방적인 벌목 작업이 시작된 후 ‘달빛고운마을’ 달비골은 전쟁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곳에 어둠의 세력이 무참히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수록 기록을 남겨 두어야 하는데 도무지 적을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농땡이를 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 했던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태영건설은 용역경비라는 용병을 투입해도 밀리지 않자 대구시건설관리본부의 귀하신 몸들이 달비골로 납시었습니다. 주민들이 몇 일 싸우다 밀렸으면 코빼기도 안 보일 인간들이 사고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자 부담을 느낀 것이죠.
그냥 ‘생까기’로 일관하기에는 부담이 컸는지 ‘현장 가서 확인하라’는 윗전의 지시가 있었겠죠.
몇 일 전 아고라 회원 한 분이 휴무라고 달비골을 다녀갔습니다. “추운데 집에서 자는 게 미안하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묻기에 ‘생김’을 부탁했더니 챙겨다 주어 잘 먹고 있습니다. 11시 무렵 농성장에 도착해 걱정 어린 얼굴을 하며 쳐다보더군요.
작년 광우병 정국을 지나면서 인터넷에서 자기 의견만 개진하던 네티즌들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거리로 나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확산’의 위력을 알고 있는지라 저도 한 발 걸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이 하는 게 황당하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잡아가며 ‘운동선수’들이 일찍 퇴각했을 때 그들은 ‘촛불을 끄면 안 된다’며 계속 불씨를 이어갔습니다.
똑똑하고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다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앞산을 지키려고 남아 있는 우리 앞산꼭지들이 이들과 같은 것 같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던져 ‘자연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자신을 지키는 것’임을 실천하는 어찌 보면 셈에 어두운 사람들이기도 하죠. 자본과 권력 앞에 몸 하나로 버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서로가 서 있는 곳이 다를 뿐 불의 앞에 맞서 싸운다는 공통점은 같다고 믿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자기가 좋으면 언제든지 움직이는 앞산꼭지들과 그들을 보면서 꼼수에 빠져 잔머리 굴리던 제 자신을 되돌아보곤 합니다. 어린이집 원장부터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 노동조합 활동가, 평범한 직장인 등 직업도 다양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해 현장의 느낌을 바로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죠. 아직도 세상이 이렇게 바뀐 줄 인정하지 않고 예전에 본 책 몇 권으로 우려먹는 사람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죠.
이런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현장에 있었던 일을 실시간으로 바로 편집해 올리니 확산 되지 않을리 만무하죠. 우리 앞산꼭지들의 앞산터널 저지 ‘나무 위 농성’을 곳곳에 알리는데 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수시로 쪽지도 날아오고 격려의 댓글이 달려 큰 힘을 얻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지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는 그 열정을 보면서 관성에 빠진 저를 채찍질 하곤 합니다. 어제는 당원 한 분이 다녀갔습니다. ‘벌목 저지 싸움에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며 지나던 길에 들렀다고 하더군요.
정월대보름 행사 때 ‘그림 그리기 좋으니 오라’고 하자 ‘평소 안 보이다 그러면 속 보인다’며 극구 사양을 한 양반 중의 양반입니다. ‘잔칫날인데 손님이 많이 와야 한다’고 해도 ‘다음에 가겠다’고 해 굳이 독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싸우는데 빠져 나가는 게 미안해 멀리서 손짓만 하며 그냥 가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우리가 몸 붙이고 사는 세상이 이 정도라도 아름다운 것은 이런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모두가 제게는 스승이죠.
어제 밤 늦게부터 오던 비가 오늘 종일 오더니 오후부터는 바람이 제법 불어 봄날 특유의 변덕을 보여 주네요. 한 동안 조용하더니 ‘나무 위 작은 성’은 놀이기구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봄비가 온 후 몇 일 꽃샘추위가 올 거라더니 바람도 조금 차갑네요. 그냥 그대로 있고 싶어 하는 자연을 자신들의 탐욕의 도구로 만들려는 무리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럴듯한 포장을 하지만 결론은 말아먹겠다는 것이죠.
거기에 맞서 싸우는 우리들의 작은 힘이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자랑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이기는 싸움을 별로 해 보지 못 했기에 진다고 해서 그리 두렵지는 않으나 불의 앞에 이렇게 패배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집니다. ‘불의 앞에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고 자식들과 조카들에게 얘기해 왔는데 그런 상황 앞에 놓이게 되었으니 말이죠. 밤이 깊을수록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달비골의 죽어나간 뭇 생명들의 울음소리 같아 더욱 가슴을 매이게 합니다. (2009년 3월 13일 ‘나무 위 농성’ 90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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