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부터 농성장에 인터넷이 먹통이었다. 써 놓은 글이 몇 개 있건만 올릴 방법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인터넷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 된지 이미 오래다. 특히 농성을 하거나 파업 현장과 같이 소식을 알려야 하는 곳에는 더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새로 챙겨온 책도 없는데다 인터넷까지 안 되니 그야말로 고립무원이 되어 버렸다. 이틀은 졸다가 말다가 하다시피 시간을 보냈다. 억지춘향이라고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려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휴대전화기도 내 것이 아닌 공적인 것이라 농성과 관련된 것 말고는 하지 않으니 졸지에 면벽 수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나를 두고 ‘결벽증’이라고 하지만 공사를 구분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렇게 할 뿐인데 너무 좋게 봐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해 온 탓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인정받고 살아왔으니 굳이 버릴 이유도 없다. 이유가 있어 하는 게 아니라 책이 없어 억지로 하는 면벽수도야 말로 고역 중의 고역이다. 세상에 이런 고문이 있나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종일 숙어사전을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잠이 쏟아진다. 불면증으로 오래 고생한지라 낮잠을 자면 밤에 고생하기에 어지간하면 피하는데 쏟아지는 잠을 막을 방법이 없다. 깊이 숙면을 취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소음에 수시로 깨기도 하고, 온갖 잡념에 빠져 보기도 한다.
그야말로 짧은 인생 여행을 하는 셈이다. 솔직히 부모님 생각은 별로 나지 않으나 자식 생각이 수시로 난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이런 것인가 싶다. 자식에게 해 준 것도 업는 못난 애비라 그냥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이제 본격적인 질풍노도의 사춘기 진통을 겪을 텐데 그 아픔을 받아주지 못해 더 볼 낯이 없다. 하늘의 해 처럼 어둠을 몰아내는 소중한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만 한다. 너무 뻔뻔한 애비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싸움이 끝나면 자식에게 못 다한 것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련만.... (2009년 3월 18일 ‘나무 위 농성’ 9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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