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대처는 도를 넘어 파렴치한 짓이다.

녹색세상 2009. 2. 9. 16:51
 

역시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민주노총 핵심 집행부의 일원이 성폭력을 휘둘렀으며 피해자가 이를 문제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근본적인 자기혁신을 하지 않고 사태무마에 급급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다는 불길한 소문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번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직 강화특위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이석행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조합원에 대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요, 이를 덮으려한 민주노총 집행부 역시 같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이석행 위원장의 체포 다음 날 이런 파렴치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도피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해 전가 시키려는 매우 비열하기 그지없는 짓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후 민주노총이 보여준 태도이다. 피해자의 대리인인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성폭력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ㆍ중ㆍ동에 의해 대서특필되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며 사건을 입막음하려 피해자를 압박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 능력을 너무 가볍게 평가해 정신 나가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죽 했으면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의 발생과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최소한의 양식도 없고, 민주노조운동을 진행할 도덕적 근거마저 완전히 상실해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겠는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에게 성폭력 사건의 축소를 압박하고 경찰에 허위진술을 강요한 민주노총 임원과, 피해자가 소속된 연맹 위원장 등 핵심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겠는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사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피해자의 대리인에게 고성을 지르고 멱살을 잡은 것을 단순한 순간적인 실수로 치부하는 몰염치까지 보여 성평등을 떠나 인권의식 조차 전무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리인에 대한 고성은 피해자에 대한 언어폭력이고, 멱살을 잡은 것은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협박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를 보고 들은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고 만 것이다. 상처를 보듬어 주기는 커녕 다시 폭력을 휘둘렀으니 상식 이하의 짓이다. 충격적이고 한심한 것은 사태가 이같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중앙지도부는 5일과 6일 잇단 중앙집행위에서 성폭력 사건 후속대책과 조직 쇄신에 결론을 내리지 못 한 것이다. 즉, 일부 핵심간부들이 가해자의 행동이 개인 차원의 범죄로 임원진이 총사퇴할 필요는 없고, 대책 없는 사퇴가 오히려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 있다며 임원진의 총사퇴에 반대했다고 하니 어이없는 게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진영옥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이석행 위원장의 사퇴서와 서한을 내보이고 있다. 마지못해 사퇴를 했다는 비난과 함께, 도피를 도운 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짓을 저질렀다. (사진:참세상)


이에 허영구 등 민주노총 부위원장 5명이 “엄청난 부도덕한 문제를 안고서 조직을 지키는 것보다는 조직의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새로 출발하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전격 사퇴했다. 이같이 사태가 일파만파 커가자 민주노총은 9일 있을 중집에서 마지못해 임원진 총사퇴를 결정했지만,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이석행 위원장이 빠져 ‘파렴치 하다’는 비난을 자초해 마지못해 변호인을 통해 친필사퇴서를 보냈다. 이처럼 노동운동의 중앙지도부가 총사퇴를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김석기 서울 경찰청장에 대해 용산사태의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태 수습을 위한 임원진 총사퇴 주장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을 몰아내기 위한 정파적 논리’라고 치부하고 있는 민주노총 실세들의 무개념 뇌구조이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2005년에도 민주노총은 수석부위원장이 업자로부터 거액을 받은 비리사건이 터져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중앙지도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위원장은 이를 무시했다. 이에 사무처의 젊은 활동가들이 집단적으로 사표를 내고 위원장 사퇴를 압박했다. 이에 위원장은 할 수 없이 사퇴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퇴를 하면서 조직을 살리기 위해 집단사표를 낸 활동가 중 이를 주도한 소위 ‘강경파’들을 선별해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민주노총 사무처에서 쫓아낸 것이다. 악덕 기업들이 노조탄압 때 쓰는 수법을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사무국 활동가들에게 그대로 써먹었으니 그 도덕적 타락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물론 용산참사 대응과 MB악법 등 민주노총이 싸워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내부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자기혁신을 미루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의 최대의 무기는 도덕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총은 발본적인 자기혁신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피해여성이 소속된 전교조는 자기 조합원을 보호하기는 커녕 ‘폭력에 동조’했으니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조직이 구성원을 보호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지도부를 믿고 따를 수 있단 말인가? 전교조는 여성조합원들이 많은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 이렇게 둔감하다면 집행부가 먼저 인권 교육과 성평등 교육부터 실시해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전교조 내부의 진상 규명부터 실시하고 조직의 지도부답게 책임지는 의연한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일로 또 다시 상처를 입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평: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