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루하루 새 소리가 잦아들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봄의 문턱인 입춘이라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생명의 존귀함과 신비로움을 느낀다는 게 이런 것인가 고백해 봅니다. 어제는 앞산꼭지들의 부지런한 일꾼인 하외숙 꼭지가 맛 있는 호박죽을 갖고 오셔서 잘 먹었습니다. 없어서 못 먹지 가리는 것 없는 제게 ‘호박죽 좋아 하느냐’고 물으시니 따뜻한 정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농성장에 오면 늘 뭔가를 치우면서 깨끗하게 정리정돈 하는 모습은, 넉넉하고 푸근함 만큼이나 부지런해 젊은이들의 귀감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찬바람 때문에 낮에도 천막을 닫고 전열기를 돌려야 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달비골의 봄소식은 앞산을 향해 달려오는 거대한 겨울 세력에게 준엄한 경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제 누리방(블로그)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가 가을과 겨울에 대한 것이라 봄 분위기로 새 단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창력이 뛰어난 신효범과 칠순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청중을 압도하는 가수 김혜자(패티김) 님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심금을 울리지요. 저렇게 오래도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혜자 님은 지금까지 ‘배부르도록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 왔고, 성대 보호를 위해 담배는 아예 피우지 않았으며 술도 맥주 한두 잔 정도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재미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가수로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쌓아 온 내공은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봤더니 ‘상인남네거리’에서 이비인후과를 하는 후배가 부탁한 기능성등산복을 갖고 왔더군요. 개원 후 10년 가까이 몸을 맡긴지라 호흡기와 관련한 저의 건강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사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차비가 더 들어 돈으로 따지자면 손해지만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는 친구라 바람도 쏘일 겸 수시로 찾아가곤 합니다. 자기 동네 왔다고 밥까지 대접하는 그 정성은 고맙기만 하죠. 이번 설에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보냈어야 하는데 여기를 지키느라 챙기지 못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월에 값나가는 등산복을 빌려 달라고 하면 거리끼는 게 당연한데 ‘저는 겨울 등산을 안 한다’며 흔쾌히 보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가까운 곳에 내 몸을 맡길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든든합니다. 이래저래 많은 분들의 신세를 지면서 ‘나무 위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정성이 모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닌가 싶네요. 작년 11월 나무 위로 올라오겠다고 결심한 후 “나무 위 농성을 해야 되니 건강 상태 확인 좀 해 달라”고 할 때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니 형님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의사로서 말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며 걱정을 하면서도, 찬바람에 노출되었을 때 갑자기 올 수 있는 병에 대해 세세하게 검사하고 확인해 준 덕분에 지금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신세를 지면서 나무 위 농성을 할 수 있어 ‘대구시립기도원’의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냅니다. 2009년 2월 3일 나무 위 농성 52일째 (사진:최명희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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