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에서 전하는 서혜경의 아름다운 피아노 이야기

녹색세상 2009. 2. 2. 11:55
 

“화분에 피어나는 꽃과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축복인지를 알았지요. 개인적으로는 역시 피아노와 가족,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위의 말은 ‘하늘이 내린 피아온 연주자’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서혜경 씨가 기자와 나눈 대담 중 일부입니다. 오랜 기간 해외 연주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귀국해 경희대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오늘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가 크고 자란 곳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서혜경 씨는 2006년 10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오른쪽 가슴에 생긴 암세포가 겨드랑이 림프샘까지 번져 ‘어깨 근육과 신경까지 절제해야 한다’는 청천 벽력같은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오른손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연주자인 그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것이지요.  1980년 부조니 콩쿠르 동양인 최초 우승 이후 닥친 근육 마비를 극복한 서혜경이었지만 죽음의 문턱 앞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필 지금이냐. 이제야 조금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는데,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생각할수록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병원 7곳을 찾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 피아노만 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어요. 목숨을 앞에 놓고 피아노 얘기만 했더니 미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지난해 4월 서혜경은 자신이 연주한 베버의 ‘무도회의 권유’를 들으며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 조직은 남겨두고 암세포만 제거하는 초정밀 수술이었습니다. “수술로 기억력이 떨어져 악보를 외울 수 없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손가락을 움직여봤어요. 움직이더군요.”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33회의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건드리기만 해도 울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니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그는 다시 무대를 떠올렸습니다.

 

 

재기 무대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협연을 하는데 두 곡 모두 난곡이자 대곡이라고 하더군요. 연주 시간만 80분에 이르는 엄청난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몸이 성한 사람에게도 ‘힘든 연주’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 하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했어요. 난 평생 남들이 힘들다는 일에 도전하고, 또 성취해왔어요. 결국엔 주치의사도 원하는 것을 하라고 허락했죠.” 병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새로운 깨달음도 함께 주었습니다. 2등을 하면 병이 날 만큼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이제는 여유를 갖고 순간을 즐기면서 음악을 대하게 됐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걸 걱정하던 시절에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품에 안고 살았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사람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그가 생사의 기로에서 장기간 투병을 하다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피아노 앞에 섰습니다. 너무 부잣집에서 자라거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 밖에 모른다’고 하지요. 없는 게 없이 자랐으니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알리 만무하고, 가난이 뼈 속까지 사무쳐 한이 맺힌 사람은 자기 것만 챙길 줄 알지 나눌 줄 모른다는 것을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제 두 눈으로 직접보곤 합니다. ‘시련은 연단을 낳는다’는 성서 구절처럼 거침없이 잘 달려온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인 서혜경은 사경을 헤매는 고난을 통해 가난한 이웃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으니 거듭난 셈이지요.


미국 뉴욕에 ‘서혜경재단’을 세운 것은 “유방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활동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음악도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재단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엘스스타메’운동처럼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에게 악기를 제공하고 무상  지도를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새로운 꿈이 되었습니다. 음악교육은 아이들을 삭막하지 않게 자라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재능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그의 이야기 속에 생명의 존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아침이면 이름 모를 새 소리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 곳 달비골, 뭇 생명들의 ‘살려달라’는 애절함이 들려오는 것을 조금씩 느낍니다. 우리 앞산꼭지들의 ‘나무 위 작은 성’ 가까이에서 들리는 그 소리가 생명들의 절규 같아 귀를 기울여 봅니다.

 

 

지난 토요일은 어지간한 얼굴은 제가 다 기억하는 사대부중 동기회 총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동창회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나와 거들먹거리는 게 사실이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 내지 않는 벗들이 있어 일년에 두어 번은 모임에 나갑니다. 평범한 이웃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는 생각에 제가 발 벗고 나서서 모임을 만들었기에 더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남녀 다 합쳐 7반 밖에 안 되니 어지간한 얼굴은 다 기억해 친근감이 남 다르기도 합니다. 제가 ‘나무 위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이런 자리 와서 수금해 가라’며 바람 넣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자리 오면 취해 얼떨결에 지갑 연다’며 ‘꼭 와서 모금해 가라’고 했는데 이 자리를 지켜야 하기에 못 갔습니다. 연말연초 눈도장이라고 찍고 ‘친구가 하는 일’이라며 닦달하면 되겠지만 더 크고 소중한 일에 사용하기 위해 살짝 묻어 놓았습니다. 이왕 폐 끼치는 거라면 정말 필요하고 다급할 때 시원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루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 못 보는 대신 ‘뭇 생명들이 살고 있고, 그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아주 구체적인 사실에 눈을 뜨고 귀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느껴본 적이 없어 소중한 공부와 수행의 자리입니다. 작은 생명체를 느끼기에 이웃의 아픔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몇 가지를 놓쳤지만 더 큰 것을 준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 자리 잡은 앞산꼭지들의 작은 성, 자동차 소음보다 새 소리가 점점 많이 듣기기 시작하는 2009년 2월의 첫 월요일입니다. 모두 건강하고 밝은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2월 2일 아침 달비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