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용산참사 고 양회성 씨 부인, ‘시신 공개해서라도 진상규명하겠다.’

녹색세상 2009. 1. 31. 22:15
 

“이명박과 김석기도 내 남편과 똑같이 하고 싶어.”


“이빨도 없고 손가락도 없고. 30년 넘게 산 내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 불에 타 죽었으면 이빨이 없을 이유가 있냐. 손가락이 없을 이유가 있냐. 불에 타죽은 것이 아니라 맞아 죽은 것이다. 차라리 화재로 죽었으면 기도라도 막혔을 텐데. 시신을 공개해서라도 진실을 찾겠다. 마음 같아선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경찰청장을 내 남편과 똑같이 하고 싶다.”


29일 강제진압 현장에서 숨진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가 가슴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남편을 또다시 죽일 수 없어 망설였던 시신 공개다. 구청장이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외친 세입자들을 ‘떼잡이’라고 불렀던가. 시신공개를 하면 ‘남편 팔아 돈 달라고 하는 떼 잡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을지언정, 죽은 게 원통해서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 그는 “죽음의 원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밝혔다. (사진: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남편이 죽은 걸 알았을 때 심정은?


“돈 없는게 원통했다. 짧으면 3개월을 생각하고 올라갔다. 장남한테, '아빠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 역할 하라고, 집에 일찍 들어와 엄마 잘 살피라'고 말하며 이상하게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한테 야단한번, 매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올라가기 싫으면 저런 모습 보이겠나 싶어 가슴이 아팠다. 살아야 해서, 먹고 살려고 올라갔는데,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양회성 씨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30년 넘게 산 내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  불에 타죽은 것이 아니라 맞아죽은 것이다. 시신을 보면 안다. 불에 타 죽었으면 이빨이 없을 이유가 있냐. 손가락이 없을 이유가 있냐. 망루에서 함께 떨어졌다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으니. 시신을 보면 안다. 오죽하면 시신을 공개할 생각을 하겠나. 죽은 사람을 또 죽일 생각을 했겠는가. 이대로 그냥 끝내기엔 남편의 죽음이 너무나 원통하다.”


(고 양회성 씨와 함께 망루에서 떨어진 지모(39)씨는 현재 다리 골절로 병원에 입원, 치료중이다. 그 역시 양 씨가 불에 타죽은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살려고 망루에서 뛰어내렸는데, 다시 망루로 들어갈 수 없다. 만약 망루에 다시 들어갔다면 경찰 폭력을 피하려다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남편은 왜 옥상에 올라가게 되었나?


“있는 사람만 살게 하고, 서민은 구렁텅이로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정부에서 서민을 위해 대출을 늘린다고 하는데, 정작 서민은 대출받을 길이 없다. 담보가 있어야하는데, 서민에게 담보가 어디 있나? 실 평수 100평 식당을 운영했다. 보증금, 권리금 줘서 2억 넘게 들였는데, 5000만원을 보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5000만원으로 어디 가서 장사하라는 이야기인가. 대화는 전혀 없었다. 건물주는 보증금도 주지 않았다. 보상금을 받지 않으면 보증금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철거가 시작된 이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월세도 못 냈고, 보증금에서 빼면서 살았다. 건물주에게 보증금만이라도 제대로 돌려달라고 했는데, 그마저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다음엔 용역들이 들어와서 나가라고 협박을 했다. 우리가 경찰, 시민에게 행패 부리려고 올라갔겠나? 마지막에는 임시로 장사할 수 있는 환경만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올라갔다. 없는 사람이 먹고 살려고 올라간 것인데,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경찰청장을 내 남편과 똑같이 하고 싶다.”


- 망루에서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

“위원장(고 이상림 씨 아들, 현재 구속 상태)이 봤다. 특공대가 쳐들어오자 우리 남편과 이상림 씨가 나서서 ‘대화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위원장이 ‘위험하니 피하라’고 했는데, ‘자기들은 나이가 있으니 먼저 대화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랬던 남편이 죽었다.”


(이날 부상자들은, 하나같이 ‘경찰의 폭력이 심했다’고 말했다. 한 부상자는 경찰에 맞아 기절을 했는데, 불길에 깨어났다고 한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하마터면 또 하나의 참사가 일어날 수 있던 순간이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가족들이 똘똘 뭉쳐 끝까지 싸울 것이다. 남편이 너무 비참하게 돌아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불쌍하다. 너무 고생만하다가, 죽음까지도 편하게 가지 못하고 비참하게 가게 했다. 꼭 진상규명을 하겠다. 부디 남편이 이 세상보다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것 밖에 없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