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새해 아침에 전하는 앞산시립기도원 입산 뒷이야기

녹색세상 2009. 1. 1. 21:25

 

제가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올 줄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올라가기로 한 앞산꼭지가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체감온도 영하 19.5도(?) 이하로 내려가 분위기가 냉랭하기 그지없었지요. 이럴 때 누군가 물꼬를 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럼 내가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많이 따지고 요구 사항 많은 깐깐한 인간’이 이런 때는 아주 단순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저항’에 부족한 제가 ‘평화의 도구’로 쓰인다니 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하지요. 앞산꼭지들이 ‘대구의 심장부인 앞산을 지켜야 한다’며 끈질기게 싸우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늘 마음의 빚이 쌓여 갔습니다. 수시로 일촌계 소식을 접하면서도 몸이 가지 못하는 핑계가 생기곤 해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만 했습니다.

 

 

장기파업이나 지역주민들의 운동에서 늘 보듯이 처음에는 확 달려들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 하나 둘 떨어지고, 서로 상처도 받아 정말 기운 빠져 싸울 마음 안 생긴다는 건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직업이 깡패인 후배에게 물어보니 “주먹 센 놈 보다 끈질긴 놈이 더 무섭다”면서 “형님처럼 물고 늘어지면서 조목조목 따지면 두 손 들고 맙니다.”며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렇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모르지 않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기를 늦추다 앞산꼭지들이 결의를 다져 12월 14일 ‘나무 위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내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 보안 유지”를 부탁 했지만, 건강문제가 신경 쓰여 주치의사인 후배에게는 ‘나무 위 농성’을 할 예정인데 ‘몸 좀 봐 달라’고 했습니다. 순간 후배는 굳은 얼굴로 “선택은 형님이 알아서 하지만 의사로서 말리고 싶다”며 큰 걱정을 하더군요. 올라가기로 했으니 말에 책임을 져야하지만, 올라가서 몸이 탈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산을 좋아해 수시로 등산을 다니곤 하지만, 천막에서 자본지 20년이 가까워 시험 삼아 용두골 농성장에 하룻밤 자러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추운 골바람에 잠도 안 오고 사고 후유증으로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어깨가 밤새도록 아파 혼이 났습니다.

 

  ▲ 바로 옆 장미아파트 7층 높이와 비슷한 약 18미터 높이의 상수리나무 위에 있는 ‘앞산시립기도원의 모습.


‘하룻밤에 이런데 장기 농성을 할 수 있겠나’ 싶은 걱정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재활의학과 주치의사는 ‘차가운데 자면 근육수축으로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하니 더 긴장할 수 밖에요. 이왕 꺼낸 말 해 보자 싶어 낡은 집이라 바람 들어오는 교회 서재에서 적응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첫날 자고나자 허리 부위 근육긴장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다, 감기 몸살까지 겹치고 말았습니다. 침대에 전기장판도 깔고 전열기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잠자리가 바로 표시 나더군요. 일주일 정도면 나을 줄 알았는데 2주 넘게 심한 감기 몸살로 고생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오규섭 목사는 전두환 정권 때 강제징집을 당해 저처럼 오른쪽 어깨를 다쳐 30년 가까이 고생하고 있어 ‘동병상련’의 아픔을 서로가 잘 알지요. 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가도 별 준비를 안 해 걱정은 되었으나 내 몸이 죽을 맛이라 남 걱정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더군요. 거기에다 올라오기 일주일 전 후배 병원에 갔더니 ‘형님 얼굴이 갑자기 비대칭’이라며 몇 가지 검사를 하는데 긴장되더군요. 눈이 안 좋은 것도 잘 때 자기도 모르게 눈을 뜨고 자서 안구건조가 생겨서 그렇다는 말에 ‘이러다 약속 못 지키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10년 가까이 몸을 맡겨온지라 철 따라 어떤 병이 오는지 누구보다 제 몸의 상태를 잘 아는 후배 말인지라 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비인후과에서도 안면 비대칭 치료는 하지만 먼저 신경과로 가서 검사부터 해 보라”고 해 바로 갔습니다. 근전도 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한 의사는 ‘약간 비대칭은 있으나 검사 상 이상없다’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해 일단 안심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형님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얼굴 양쪽이 다르다”는 후배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몇 일 후 ‘친구들과 등산도 하고 여행간다’며 처방을 해 달라고 했더니, ‘정 그러면 혈액순환제가 도움 된다’며 ‘일주일 후에 다시 보자’고 해 지난 금요일 3시간의 외출을 해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지금 괜찮으면 이상없다’고 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후배에게는 ‘긴급 상황에 대비한 처방’을 부탁했더니 ‘감기가 왔을 때 먹지 괜찮으면 먹지 마라’는 주의를 빠트리지 않더군요. 일주일에서 열흘은 가는 감기 몸살도 강력한 성분의 항생제로 정리해야 ‘용한 의사’란 소리도 듣고, 제약회사로부터 뒷돈도 챙기는데 2주를 가도 내성이 없는 약 처방을 내릴 정도니 얼마나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복식호흡과 자전거 타기로 몸을 단련했다 할지라도 골바람 세찬 이 엄동설한에 ‘나무 위 농성’ 날자가 다가오니 차차 걱정이 되더군요. 혹시 싶어 보험은 하나 챙겨두었습니다. 안전사고야 준비가 너무 치밀해 앞산꼭지들의 고생이 많아 탈이고, 소음 때문에 불면증이 악화되어 잠은 잘 수 있을까 걱정을 했으나 시간이 되면 졸리는 걸 보니 적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질것을 각오한 싸움’이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올라왔습니다. ‘나무 위 농성장’ 침탈에 대비해 필요한 물품도 준비해 놓았고, 의논을 해야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밑에서 걱정할 때 보다 막상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오고 나니 한결 마음 편해 지내기 좋고, 이렇게 남이 챙겨주는 밥을 먹는 게 처음이라 얼떨떨할 뿐입니다. 2008년 말을 집이 아닌 상수리나무 위에서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벽마다 부족한 인간과 제 자식을 위해 기도하시는 신앙의 어머니이신 어른의 “아무리 옳다고 하는 일이지만 부모님과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연세 많은 부모님과 어린 자식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혀 눈가가 적셔오는군요. 새해 첫날 값을 하는지 바람도 더 많이 불어 상수리나무 위 천막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새해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 공화국의 딱정벌레들의 요란한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하외숙 작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