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에서 보내는 2008년 마지막 날의 편지

녹색세상 2008. 12. 31. 16:07
 

어제는 종일 바람이 불어 밖으로 나가기 싫어 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단단히 준비하고 올라왔다 해도 체감 온도가 확 떨어지는 겨울철 골바람 앞에는 재주가 없지요. 다행히 몸은 이상이 없으니 ‘나무 위 농성’의 틀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근 아파트의 주민인 손태익 꼭지가 본부천막 주변 정리와 함께 떨어진 펼침막을 새로 다는 등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마 이 양반이 없었더라면 ‘나무 위 농성’은 마음만 먹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 농성장’은 18미터가 조금 넘는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제법 흔들거리곤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준비를 하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하는 저와는 달리 그야말로 전천 후 사나이입니다. 너무 일이 몰려 저러다 사람 잡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입술이 부르터도 몸을 아끼지 않으니 말이죠. 피곤하면 바로 누워 버리는 저와는 다른 책임감이 뛰어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운데 서로 조금씩 나누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깨가 고장 나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해 거들지 못하니 저로서는 더 갑갑하기만 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일을 하지 못하는 심정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군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나무 위에서도 듣습니다. 죽거나 다치지는 피해자는 늘 약자인 여성이나 아이들뿐인 전쟁, 남의 땅을 빼앗고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예 몰아내려는 저 만행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요. 앞산터널 문제 역시 마찬가지로 앞산의 주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탐욕만 가득한 뿐이지요. 주변 모든 여건이 바뀌었으면 정책이나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수정해 대안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밀어 붙이기’로 일관하는 대구시와 태영건설의 모습에서 그 땅의 주인을 몰아낸 이스라엘의 횡포와 너무 흡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같은 말을 살짝 포장만 해 각색하는 저 흉측함이 내 안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올려준 진공청소기로 천막 안을 청소했더니 한결 편하고 좋군요. 일요일 이부자리를 다 꺼내어 털기는 했지만 곳곳에 쌓인 먼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는데 청소하고 나니 가래가 별로 나오지 않아 아주 편합니다. 부탁은 받아 놓고 바로 챙겨주지 못한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거의 매일 청소를 하고 씻던 깔끔이가 쌓인 먼지를 보고 있었으니 편할리 만무하지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과 정감 어린 손질, ‘배가 출출할 거라’며 새참을 가져 오는 정성을 받으니 기분 또한 좋습니다. 이런 정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것 같습니다.


2008년의 마지막 날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어 안쓰럽다며 걱정하는 벗들의 쪽지와 편지가 인터넷을 통해 날아옵니다. 날리면 바로 가는 참 편리한 세상이지만 부작용도 지뢰밭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록 서 있는 곳이 서로 다르고, 가고자 하는 곳도 다르지만 친구가 하기에 ‘건강 조심하라’고 해 주니 고맙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재벌 계열회사 상무로 있는 친구의 ‘네가 하는 일이니 존중한다’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더군요. 생각지도 않았던 앞산시립기도원 입산에 사실 저도 얼떨떨했으니 벗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겠지요. 험한 토목 현장을 돌아다닌 경험이 많아 남들보다 최악의 상황을 수시로 겪어봐 적응 잘 하고 있건만 염려해 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야말로 연말연시를 달비골 앞산시립기도원에서 맞으니 ‘시선집중’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