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물리력 대신 ‘이야기’로 구본홍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다. 29일 아침 9시 8분, 구 사장을 태운 차량이 YTN 사옥 앞에 섰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이전과 달리 마중 나오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 구 사장을 에워싸는 대신 함성과 야유를 섞어 구 사장을 맞이했다. “오늘은 몸으로 저지하지 않고 구 사장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겠다.”며 ‘토론투쟁’을 벌인 것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그동안 구씨나 김사모 총무국장 등이 조합원들에게 ‘한번 얘기를 들어보라’고 했는데 오늘 그 논리를 한번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구 사장에게 “우리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밟고 사장실로 올라가라”고 외쳤다.
구 사장이 차에서 내려 조합원들 앞에 섰다. 늘 마찬가지로 김사모 총무국장, 류희림 대외협력국장 등이 구 사장 옆에 나란히 섰다. 이때부터 마이크가 오가는 ‘50분토론’이 시작됐다. 조합원들 80여 명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한 조합원이 깔개를 마련해줬으나 구 사장은 줄곧 서서 토론에 응했다. 조합원들과 구 사장의 설전이 뜨거워지던 무렵 왕선택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10월 8일 보도국 항의방문 당시의 격정 토로가 오늘도 이어졌다. 왕 기자는 흥분하지 않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 출근을 시도한 구본홍 YTN 사장이 2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YTN 노조원들에게 가로막혀 자진 사퇴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15년전 YTN은 이름밖에 없었습니다. 빈 공간에 책상, 의자 옮기면서 시작했죠. YTN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다녔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멍가게였어요. 그걸 이렇게 번듯한 20층 건물로 바꿔놨습니다. 이 후배들과 더불어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면서, IMF때 6개월 동안 월급 못 받으면서 해낸 거에요. 그러려면 90%가 공정성, 신뢰성입니다. 구 사장 옆에 서있는 선배들, 000선배, 우리 같이 굶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YTN 안 버리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구 사장님이 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후배가 오순도순 지냈던 직장이 순식간에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눈을 부릅뜨는 직장이 됐어요. 저기 노종면이.... 목이 잘려서 피가 철철 나잖아요...., YTN 1등 공신인 노종면을 왜 자릅니까? 구 사장님 우리 불쌍한 식구들 생각해 주신다면 결단을 내려주세요.”
왕 기자의 말을 듣고 있던 일부 여성 조합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퇴하세요’라고 거듭 소리 질렀다. 왕 기자의 토로는 계속됐다.
“선배들! 우리 후배들이 싸가지 없게 한 것 있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러나, 좀 봐주세요. 같이 살아온 동지 아닙니까. 구 사장 오면 YTN 금방 KTV 돼요. 그러려고 고생했습니까. 우리들이요. 투쟁한 다음에 YTN 품질 저하됐다고 욕먹을까봐 더 열심히 일합니다. YTN 노조요? 강성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좌편향? 아닙니다. 왕선택이 보증하면 다 보증하는 겁니다. 구 사장님 용단 내려주세요. 공정성 담보하겠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시청자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왕 기자가 말을 마치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대답을 해 달라’ ‘사퇴해야 모두 산다’는 말이 나왔다. 한 조합원이 “구 사장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어렵게 일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구 사장은 “인감은 경영실장이 관리하고 사장이 직인을 찍게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그럼 사장 출장, 휴가 때마다 월급이 안 나온다는 말이냐. 얼마든지 위임할 수 있지 않느냐? 다른 결재는 밖에서 잘만 하지 않느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지 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조합원 입에서는 “간부들과 호텔 다니면서 수 천 만원씩 써도 되는 것이냐. YTN 형편과 사장이 쓰고 다닌 씀씀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는 등의 ‘과다지출’ 비판이 쏟아졌다. 구 사장은 “정상적으로 회의할 수 있는 분위기면 안 그랬을 것”이라면서 “과다 지출 지적에는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질의와 항의가 빗발치자 아침 9시 55분 경 발길을 돌렸으며 일부 간부들이 구 사장을 큰 길까지 배웅했다. 구 사장의 뒤로 “월급 갖고 장난치는 가정파괴범” “다시는 오지 마세요”라는 조합원들의 절규가 뒤따랐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구본홍은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구본홍의 강수는 계속될 것 같다. 겨우 4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싸우는 YTN노동조합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오마이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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