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서도 상대방의 처지나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마구 뱉어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말을 한 당사자는 ‘걱정하기에 한 말’이라는데 듣는 사람이 기분이 상한다면 ‘걱정이 아닌 간섭이나 강요’가 된다. 그것도 우정이란 이름을 빌려서 하면 정말 기분 엿 같다. 이런 일방통행이 더 심해지는 것을 ‘언어폭력’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너에 대해 이런 말을 하려는데 어떠냐’고 묻고 나서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을 간섭이나 강요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우린 ‘충고나 조언’이라고 하며, 어지간하면 들으려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걱정해 잘 되라고 한 말이라 할지라도 자식의 의사는 무시하고 그냥 퍼부어 댄다면 과연 사랑해서 하는 것인지, 지나친 걱정이나 간섭인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핏줄이라도 이러할진대 친구라며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상대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정없이 퍼부어대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본다. 남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완전 일방통행이다.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강요를 넘어 ‘심각한 언어폭력’이 되고 만다. 흔히 ‘뒤끝 없는 화끈한 사람’이란 말을 한다. 시원하게 원 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했으니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테니 그야말로 화끈하다.
그렇지만 그 화끈한 말을 들은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뒤끝없는 화끈한 게 얼마나 심한 언어폭력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논리나 토론이 없고 그냥 감정대로 마구 말을 던지고, 문제 제기하는 것을 ‘말 많은 인간’으로 모는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상대의 처지를 생각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네가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 근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틀렸다면 틀린 거야’라고 몰아붙인다면 이는 명백한 인권침해요 폭력이다. 자기 삶이 반듯하지 않은 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너 틀렸어’라고 한다면 ‘웃기네’를 넘어서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게 인간사다. 칭찬은 긴장을 무장 해제 시키는 힘이 있지만 간섭은 귀를 막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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