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라고 하는 후배에게

녹색세상 2008. 10. 28. 15:51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 진데다 바람도 불어 차가운데 잘 지내나? 기온이 떨어질 때가 되었지만 바람까지 부니 체감 온도가 늦가을 같구만. 푸르름을 자랑하던 거리의 은행나무도 하나 둘 노랗게 물 들어 가는 게 영락없는 가을이네. 오늘은 기온이 더 떨어진 것 같아 11월은 넘어야 입는 등산복을 꺼내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더니 팔자 좋아 산이나 찾는 여유있는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많더구만. 난 지갑이 비어도 그래 안 보이니 이것도 하늘이 주신 복으로 봐도 되겠지? ^^ 자네를 만난 지도 벌써 5년이 가까워 오는구만. 마흔이 덜 되었던 자네 연배들이 불혹이 되고, 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코  앞에 두고 있으니 세월 빠르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 늦게 만났음에도 같은 길을 가는 노땅이 몇 살 더 먹었다고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 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같이 꿈꾸다 맺은 인연이니 이 보다 기쁘고 좋은 일은 없다고 봐요. 자칫 딱딱하게 사무적으로만 대하면 마주치기가 거북할 텐데, 아래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낮추면서도 위 사람에게는 예우를 갖추는 자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아. 그냥 얼굴만 알다가 부산에 무슨 연수가 있어 같이 갔다 오면서 서로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후로 이런저런 일로 자주 마주치게 되었지. 남들은 깐깐하고 별난 인간이라고 피하는 나를 ‘형님, 시간되면 한 잔 합시다’며 붙들곤 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지.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큰 인연이지. 언젠가 자네가 오래도록 고민하는 내용을 술자리에서 실컷 듣고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거침없이 내 놓는 걸 보고 ‘형님,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한 적이 있지. ‘공사를 구분하는 게 맞다’는 내 말에 또 한 번 놀란 자네의 얼굴이 지금도 떠 오르는구만.


그래요, 왁자지껄한 겉모습과는 달리 차갑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개인의 일과 업무를 구분하며 살아 왔다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아버지와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우리 집안의 ‘삼대에 걸친 두 집 살림’을 친정(외가)에서 모를 정도로 함구하며 살아오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영향이겠지. 사기꾼들과 조폭들이 버글 거리는 건설현장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생긴 생존본능인지 모르지만 오해 받을 정도로 구분해 왔어. 그런 덕분인지 ‘저 인간은 아니면 아니다’고 주위에서 조금씩 받아 주더구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없는지 되돌아보곤 한다네. 자기 성찰이 없는 변혁은 잘못하면 새로운 독선이 될지 모르기에 경계를 하려고 말 일세.


그저 살아 온 이야기나 게시판에 올리다 어느 날 아주 민감한 내용을 올려 파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지. 알고 보니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랐어. 문제 제기를 할 때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판단해야 하는데 간과하는 바람에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반성을 늦게야 했다네. 당사자인 동지에게는 올해 와서야 사과를 했는데 양반이라 너그러이 받아 주시더구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작년 말 전부 가만있는데 혼자 제소까지 했으니 놀란 사람들이 많았을 거야. 사고를 알고도 침묵해온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괴로워 이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피해를 당한 분의 동의를 얻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사람 죽인다’는 희한한 소문까지 나돌기도 했지.


일이 벌어 졌을 때 가해자가 최소한의 예의만 보여 줬어도 크게 번지지 않았을 텐데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못해 계속 증폭되어 지역의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아는 지경까지 오고 말았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존감 없는 불쌍한 영혼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네. 앞으로도 그런 일을 보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 제기를 하려고 해. ‘침묵은 죄악’이라고 알면서도 막상 자기 앞에 닥친 일이 아니면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게 현실이지만 어떤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가만있지 않으려고 해. ‘맞는 것을 맞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자네가 그렇다 할지라도 그냥 넘어가거나 덮지는 않을 걸세.


이런 나를 보고 누가 ‘그만 하면 안 되느냐’며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하기에 “당신이나 가족이 피해를 당해도 그런 말 자신 있게 하겠느냐?”고 했더니 조용하기에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면 곤란하다”고 했어. 언젠가 자네에게 ‘난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을 거야. 일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기에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어요. “사람이 문제지만 사람만이 희망”이기에 난 사람을 먼저 선택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주어진 일 처리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일 잘하는 놈’에게 눈이 가는 게 현실이지.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사람을 먼저 선택하는 게 우리가 사는 길이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사는 최선의 길이라고 본다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노력도 병행하면서 말 일세.


자기 성찰이 없는 변혁은 자칫하면 독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자네도 누구보다 잘 알 거야.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성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가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독선과 아집에 빠진다”고 했어. 우리 갈 길이 그리 순탄하지 않기에 좀 더디 가더라도 동지들과 이웃을 뜨거운 가슴으로 안고 같이 손잡고 갔으면 좋겠어. 사람 귀한 줄 알고 소중히 여기면서 말야. 날씨가 추워지는데 건강에 유의하고 다가오는 겨울 잘 맞이하길 바라네. 참, 자전거 부지런히 타는 거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