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금융위기 부른 건 ‘금권정치’

녹색세상 2008. 10. 26. 11:06
 

“내게 묘한 일이…” 한 줄짜리 수상 소감


지난 10월15일 미 다우존스 지수가 반짝 폭등세를 뒤로한 채 다시 추락했다. 전날보다 733.08포인트(7.9%) 폭락한 8577.91로 장을 마감했다. 더 이상 위기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법한데, <월스트리트저널>은 이튿날치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위기감이 시장의 폭락세를 재점화했다’고.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날 이른 아침 자신의 블로그(krugman.blogs.nytimes.com)에 올린 짤막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대체 폭락 장세에 어떻게 불을 지를 수 있다는 거지?” 그는 이 글의 제목을 ‘파쇼들의 마지막 발악’이라 붙였다. 허, 제법 과격하시다. “오늘 아침 내게 묘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월13일 아침 7시40분(미 동부시각),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흥미로운 아침’이란 글을 올렸다.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고,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결정문이 링크돼 있었다. 그는 이날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란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금융위기를 바라보며, 뉴딜의 귀환을 예감하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10월13일 수상 소감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그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평생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마냥 기다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다고 생각해, 그동안 노벨상에 대해선 아예 생각도 않고 지내왔다”고 덧붙였다. 이튿날 열린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회의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세계 제1의 경제학자’라 적힌 머그컵이 들려 있었단다. ‘아이비리그’의 대명사인 예일대를 거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채 서른 살이 되기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NEC)를 거쳤다. 30대엔 모교 두 곳은 물론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교정과 런던정경대(LSE) 등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에서 두루 강의를 했고, 지난 2000년부터는 역시 미 동부 명문인 프린스턴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뉴욕타임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스스로 인정하다시피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격한 성격”이 흠이긴 하지만, 이쯤 되면 미국 사회의 주류 중에서도 주류로 불릴 만하다. 그럼에도 지난 8년 세월을 온통 조지 부시 행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을 비난하는 일로 일관해왔다.


“만약 부시 대통령이 ‘지구는 평평하다’고 말한다면 미국 언론의 반응은?” 그의 거침없는 ‘입담’ 가운데도 ‘백미’로 꼽을 만한 얘기 중 한 대목이다. 답은 이렇다. “모든 언론이 일제히 ‘지구의 모양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이 나왔다’고 보도할 것이다.” ‘객관주의’로 치장한 미 언론의 행태를 비판한 게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미국인 상당수가 영국이나 캐나다 언론의 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의 발표가 나오기 전에도, 크루그먼 교수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진 미국 사회에 대한 그의 현실 인식이 궁금한 이유다. 지난해 가을 내놓은 ‘한 자유주의자의 양심’(한국어판은 <미래를 말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냄)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사회가 “제2차 금권정치 시대의 한복판에 있다”며 “미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 오리건주 ‘피디엑스저스티스’란 단체가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지난해 11월3일 포틀랜드의 바그다드극장에서 열린 이 책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득 불평등 1920년대 수준


“미국이 자랑해온 ‘중산층 사회’는 철저히 정치가 만들어냈다. (제1차 금권정치 시대가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 뒤)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로 형성된 중산층은 뉴딜정책의 산물이었다. 대공황(이 만들어낸 위기감)은 사회복지, 실업급여, 최저임금, 친노동 정책, 누진세·법인세 강화 등 일련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인 ‘압축기’ 구실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장기간 이어졌다. (적어도 1970년대 중반까지) 30여 년 동안 새로운 평등사회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기준, 관점이 유지됐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제2차 금권정치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원인은 뭘까? 크루그먼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노동운동의 몰락이다. 1960년대 캐나다와 미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전체 노동자의 약 30%로 비슷했지만, 21세기 들어 캐나다의 노조 가입률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11%대로 추락했다. 그나마 조직이 쉬운 공공 부문 노동자를 빼고 나면 노동조합 가입률은 8% 선이 고작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의 영국을 제외하고 선진국에서 노조운동의 붕괴가 급속도로 이뤄진 사례는 미국이 유일하다”며 “노조의 몰락은 임금 수준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척도와 규범이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사례가 1950년 제너럴모터스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맺은 단체협약인 이른바 ‘디트로이트 조약’이다. 노동자의 권익과 노조활동의 자유를 대폭 강화한 디트로이트 조약은 비단 조직된 자동차업체 노동자들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크고 작은 기업 단협안의 모델 역할을 하면서,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노조의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파국을 맞기에 이른다. 노조의 몰락 이유 역시 ‘정치’였던 게다. 크루그먼 교수는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특히 미국 경제가 급격히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 부문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용자 쪽이 교묘한 공작을 벌였고, 이를 정부가 묵인해줬다”고 비판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월마트에 노동조합이 없는 것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안전망 확충이 급선무 주장


둘째,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 운동권’의 등장이다. 헤리티지재단과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미국 보수 진영은 공공연히 뉴딜과 그 전통을 잇는 린든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시대의 종언을 부르짖는다. 크루그먼 교수는 “1950년대만 해도 공화당 출신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사회보장 등 뉴딜정책을 없애려는 사람들을 ‘극소수 멍청이들’이라고 불렀다”며 “하지만 보수 우익 운동단체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기 시작하면서 공화당 주류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기독교 우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공화당은 지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보수적 사회·경제 정책을 뼈대로 한 이른바 ‘미국과의 계약’을 내세워 상하 양원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감세와 규제 철폐, 작은 정부를 부르짖으며 ‘열정적 보수주의’를 자처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였던 게다.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몇 년 새 부동산 거품 붕괴와 그로 인한 금융위기를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며, 월스트리트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위기 탈출의 해법은 뭘까? 그는 은행 지분 인수(이른바 ‘부분 국유화’) 등 금융권을 포함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의료보장 제도를 중심으로 한 사회 안전망 확충을 급선무로 내세운다.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뉴딜 시대의 귀환’을 떠올리는 이유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