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위기 불거진 작년7월 이후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진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투매 탓이 크다. 외국인들의 매도세는 지난해 7월 이후 미국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본격화했다. 지난해 7월 이후 외국인 순매도(유가증권 시장 기준) 규모는 56조9535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국내 투자자(기관+개인)들은 반대로 25조8634억원을 순매수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외국인의 올해 순매수 규모만 해도 30조원을 웃돈다. 증시 참여자들에겐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지난해 10월쯤부터 뚜렷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순매도로 돌아섰지만, 국내 증시는 이를 ‘위험 징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증시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펀드 자금 등 투자자금이 꿈의 지수라고 불리던 코스피지수를 2000선까지 밀어 올리면서, 증시에선 “주권이 돌아왔다”거나 “대세 상승기 도래” 등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위기는 이미 시작된 뒤였다. 지난해 7월 지금은 파산한 미국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자금위기설 등으로 ‘세계 금융의 심장’으로 불리던 미국 증시는 진흙 구덩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아치운 주식 규모는 15조4천억원으로, 2006년 한 해에 판 총규모(10조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미국과 유럽 증시의 혼조세가 이어지고 중국 증시까지 10월 이후 무너지기 시작하자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이나 정치권에선 대통령 선거 기간과 맞물리면서 여전히 대책 없는 낙관론만 팽배했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한 증권사 객장에서 “내년(2008년) 3000을 돌파할 수 있고, 임기 중 5000까지 갈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0~12월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9조원 어치 이상 소리 소문 없이 주식을 내던졌다. 외국인 투매는 올해 들어 더욱 강해졌다. 베어스턴스 등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등 부실이 금융회사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은 주가가 바닥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외국인이 던진 주식을 모두 받아줬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이 25조5천억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동안,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은 각각 16조2천억원과 2조5천억원을 순매수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25.4%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달려갈 때, 국내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인 증시로 빨려 들어간 셈이다.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지자 증시 전문가들은 이제 증시의 바닥 전망을 꺼리고 있다. 투자자들도 적립식 펀드 납입을 중단하고 있다. 결국 국내 증시의 위기를 모두 공감하는 데 무려 1년여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3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괴력을 수차례 경고했으나, 증시 전문가들조차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지금도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9월 “우량 기업들에 대한 선투자,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반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이 발언이 있은 지 한 달 남짓 만에 코스피지수는 34.1% 추락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은 3조9천억원어치를 팔았고, 개인투자자들은 2조8천억원 어치를 샀다. 금융위원장의 빗나간 예측으로 투자한 사람들에게 손해 배상을 할 것인지, 잘못된 예측에 대해 사과라도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이 놈의 나라는 오직 묵묵부답이다. (한겨레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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