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이명박 감독의 방어율은 0.747

녹색세상 2008. 10. 26. 11:29
 

이명박 감독은 남들 흔히 받는다는 엘리트 야구 교육을 그는 접해보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현대 실업팀에 들어갔다. 그는 열심히 했다. 기관지가 안 좋은데도 주는 술 다 마셔가며 감독에게 환심을 얻는데 온 몸을 바쳤다. 그리고 열사의 나라로 발령받아 건너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등지고 삽을 들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땀 흘리는 노동을 한 게 아니라 돈 만지는 것만 한 게 들통이 났다. 그럼에도 ‘난 삽질의 대가’라며 그 삽으로 볼을 쳤다. 

 

▲ 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 강부자 정권에 맞서는 99% 국민희망 만들기, 민생민주국민회의(준) 발족식’에서 국민들이 ‘공정택 교육감, 이명박 대통령, 어청수 경찰청장, 강만수 장관, 이봉화 전 차관,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철창에 가두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홀로 야구 기량을 쌓은 것이라 그냥 닥치는 대로 했더니 삽에 구멍이 났다. 볼 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모래에서 거친 슬라이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니폼은 걸레가 됐다. 최연소 주장에 최연소 코치를 거치더니 급기야 최연소 감독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는 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평민 야구의 신화적 존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를 다룬 드라마 ‘야망의 그라운드’, 서적 ‘마구는 없다’는 높은 시청률과 판매율을 보였다. 그는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불세출의 영웅이 뛰기엔 실업 무대가 좁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키워준 정주영 구단주와 결별하고, 프로야구단 코치라는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다. 하지만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시기하는 세력의 표적이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선수에게 과도하게 약물 복용을 주문했다는 트집에 발목이 잡혀 결국 그라운드를 떠나게 된다. 선수 중 김유찬이라는 자가, 상대편 팀에 건너가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바람에 옴짝 달싹 못하게 된 것도 있었다.

 

야인이 된 이명박. 한동안 야구 토토 사업해 본다며 청년 실업가 김경준 씨와 손잡고 BBK(Baseball Batting of Korea) 회사를 만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들면서 ‘운빨’은 그의 품에 안겼다. 실업리그 서울시청 감독이 된 것이다. 그는 청계천 마구, 버스전용 슬라이딩을 개발해 선수들에게 주입시키고, 밤에는 기도회를 열며 단합을 다진 끝에 우승의 축배를 들게 됐다. 또 이를 바탕으로 그리고 급기야 국가대표 감독 자리에 오른다.


2008년 리그가 열렸다. 이명박 감독은 패배는 적었지만 잦은 구설수로 물의를 빚은 노무현 감독이 물러나고 그 뒤를 이어받았다. 이명박 감독은 팀 혁신을 공언했다. 전임 노무현 감독의 ‘참여야구’를 실패의 전형으로 규정하더니, 지난 김대중 감독 때의 ‘햇볕야구’마저 도매금으로 묶어 한국 야구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과감히 규정했다. 또 노무현 감독이 임명한 코치와 선수는 물론 보조들까지 싹 정리했다. 그러면서 ‘Best of Best'급의 선수를 구성했다.

 

아,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명박 식 야구는 중대한 저항을 만난다. 선수들이 온갖 도덕적 하자가 바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자 이명박 감독 “야구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정말 심한 몇 명만 바꾸고 그대로 밀고 갔다. 꽉 찼던 관중석에 조금씩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이었다. 첫 경기. 미국의 매드불스(Mad Bulls)와 만났다. 이명박 감독은 경기 전 갑자기 미국쪽 부시 감독을 카트에 태우더니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친구”라며 돈독한 우의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관중석에서는 박수 치는 모습보다 갸우뚱하는 장면이 더 많이 목격됐다. 그리고 1회 초. 선발 정운천 투수는 처음에는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더니 나름대로 볼 카운트 관리를 했다. 투앤투. 그런데 이때 이명박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더니 뭐라 지시하고 내려왔다. 이때부터 ‘기막힌 야구’가 시작됐다. 계속 고의사구를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사 만루로 만든다. 

 

▲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생-민주주의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지난 상반기에 펼쳐졌던 촛불집회 기록영상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그러다가 미국 4번 타자에게 느린 직구를 던졌고, 이 타자는 만루 홈런을 날렸다. 맞았다기보다 정운천 투수가 헌사한 것일 게다. 그날 경기는 그렇게 참패로 끝났다. 이명박 감독은 “우리 국민들, 값싼 입장료로 질 좋은 경기를 보셨을 것”이라며 만족했다. 그러나 마치고 밖을 나가보니 선수단 버스 앞에서 감독 면담을 요구하는 관중들의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고개 푹 숙이고 버스에 오른 이명박 감독은 어청수 경호팀장에게 눈짓을 줬다.

 

그리고 얼마 후 어디선가 물대포가 촛불 든 팬들에게 살포됐다. 팬들은 ‘팀에서 우리에게 물대포를 쐈다’며 인터넷에서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이런 의견마저도 얼마 후 홀연히 홈페이지가 폐쇄되면서 묻혀버리게 됐다. 이명박 감독은 의문을 가졌다. ‘왜 이렇게 나에게 안티가 많아졌을까?’ 그러면서 TV를 봤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KBS, MBC의 중계방송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 ‘쌍팔년도식 야구를 구사 한다’, ‘퍼 주기식 야구를 했다’. 국가대표 감독이 우리 팀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에게는 엄청난 모욕이었다.


그는 중계 아나운서가 문제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KBS에 투하했다. 저항이 있었다. 정연주 캐스터가 ‘이런 불의한 방송 간섭에 저항 하겠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을 보내 방송 중인 중계석을 덮쳐 끌어냈다. 이제 문제는 MBC이다. 이명박 감독은 최시중 팀 닥터를 시켜서 엄기영 중계 캐스터에게 ‘너 목숨이 두 개야?’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엄기영 캐스터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이명박 감독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스포츠신문에게 스포츠 방송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궁리까지 했다.

 

그래서 방송 걱정 안 하고 경기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판은, 우격다짐이긴 해도 어느 정도 평정됐다.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국적불명의 팀 ‘머니 헤저드’였다. 많은 관중들은 10년 전을 떠올린다. 그때도 머니 헤저드와 붙어서 박해태, 뉴코아 김 등 주요 투수가 과다 실점으로 마운드 뿐 만 아니라 야구계를 떠나는 등 한국 야구에 큰 상처가 가해졌던 그 때를 말이다. 위탁 감독이 되다시피 한 캉드쉬 임시 감독은 당시 한국의 유명 선수들을 외국 구단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우리 야구의 ‘대 굴욕’이 빚어진 때의 상황이다. 이명박 감독, 이런 우려에 대해 “걱정마라. 우리 선수들의 기초체력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만수 투수를 내세웠다. 강만수 투수라, 그는 누구인가? 마구는 고사하고 변화구도 못 던지는 ‘정직한 투수’이다. 무조건 직구만 던진다. 그게 글러브에 들어가면 바로 스트라이크가 되겠지만 그 볼이 글러브에 들어간 일이 별로 없다. 늘 방망이 정중앙에 제대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구원투수긴 했다. 이미 10년 전 그 경기에 구원투수로 나와 몸값이 ‘9 원’이 된 투수가 됐기에. 관중들은 “말도 안 된다”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 경기에는 특히 토토 복권으로 배당을 건 팬들이 많았다. 그러니 ‘의외의 투수’에 다들 놀라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감독, “걱정 말라” 거듭 무마했다. 경기는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머니 헤저드’ 선수들은 강만수 투수의 공을 다 읽고 있었다. 세 타자 연속 안타로 만루 상황. 그리고 터진 홈런. 4대 0. 관중석은 분노보다 비탄의 함성이었다. 마운드에 이명박 감독이 올랐다.

 

사람들은 “이제야 교체되는 구나” 싶었는데 이명박 감독은 강만수 투수의 등을 두드리더니 손가락으로 ‘넘버 원’ 표시를 보이며 내려왔다. 그 뒤 강만수 투수는 계속 직구를 던졌다. 안타, 홈런, 안타, 홈런. 1회 말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다 됐는데 아직 무사에 만루 상황. 15대 0이었다. 관중석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러자 듣다 못한 강만수 투수. 갑자기 관중석 앞으로 가더니 “전쟁 중에 아군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욕을 하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말 열심이었다. 비지 같은 땀을 흘리며 직구만 던졌기에 말이다. 그 정력 대단하다.

 

문제는 연령이 있는 노장 투수다보니 나머지 스피드가 없다는 점, 그러니 계속 얻어맞는 게 문제다. 이명박 감독은 불펜에 구원 투수를 준비시키지도 않고 있다. 잘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 야구 위기이다. 비극의 1회 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전에 이명박 감독은 747을 이야기했다. 팬들은 7할 4푼리 7리의 팀 타율을 기대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팀 방어율을 이야기했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는 강만수로 족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계속 이러다간 큰 코 다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단주인 국민들이 성적 좋지 않은 감독을 그냥 둘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감독 교체의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만 있다. (여의도 통신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