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임금 탓 말고 정책 수정을…IMF 방식 한계 드러나’
은행장들이 뒤늦은 반성문을 쓰며 임원 연봉을 깎고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고 나섰다. 은행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다른 은행을 인수하여 세계적 규모를 이루겠다는 호언장담을 들었던 국민들은 당혹감만이 아니라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10.19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통해 은행의 해외차입 달러에 대해 1,000억 달러(140조 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해주고, 총 450억 달러의 유동성을 은행들에 직접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은행들은 한발 더 나갔다.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은행채를 매입해달라고 한국은행에 요청했다. 은행채는 연말까지 25조원 어치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대처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 정도로 한국의 은행들이 망가져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금융 불안과 자금시장 경색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지난 IMF 위기 직전에 사채업자 수준이었던 종합금융회사가 저질렀던 실수를 이번에는 은행이 고스란히 되풀이했다는 점에서 남 탓만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종합금융회사들은 저리의 단기외채를 빌려와 한보 등 재벌들에게 장기대출을 감행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채 사라져갔다. 그런데 10년 후엔 은행들이 단기외채를 빌려와 주택담보 대출 등 가계대출이라는 장기대출을 일삼았다. 대출대상만 달라졌지 영업방식은 구태의연하다. 지난 위기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다음 위기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금융위기의 원인은?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IMF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IMF가 제시한 은행의 대형화와 수익성 제고를 구조조정의 근간으로 삼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대형화의 위험성에 대한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았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2004년 1월 15일 ‘은행의 대형화와 은행 부실 위험’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2000년부터 2003년 3분기 말까지 14개 시중ㆍ지방은행의 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대형은행일수록 주가의 급등락이 이어지는 등 변동성이 크다는 것을 밝혔다. 이어서 그는 “이번 결과는 은행이 대형화되고 시장지배력이 커질수록 부실기업에 대출하는 등 공격적이고 위험한 방식의 자산운용을 벌인다는 외국 학계의 연구 결과가 국내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관료들은 ‘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무시하며 강제적 통합을 통한 대형화를 추진하였다. 이에 맞서 조흥은행 노동자 7,224명은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고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노동자들은 일산 연수원에서 수일 밤을 농성하며 저항하였으나 정부의 태도는 강경하였다. 이번 금융위기는 경제 관료들이 추진한 대형화 위주의 금융구조조정 정책이 내부 요인으로 위기를 맞은 바 있는 금융 산업을 외부요인에도 취약한 상태로 만든 잘못된 정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은행노동자의 높은 급료 탓을 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을 10년 동안이나 은행에 강요하며 세금을 축낸 경제 관료들의 높은 임금부터 탓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국정책임자의 태도가 아닐까? (레디앙/이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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