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는 주택 공급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 주택 건설방안(9.19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발표와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뉴타운과 관련해서 서울시내 7~8곳에 뉴타운을 추가 지정한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상 오보다. 국토부가 15개를 추가 지정한다고 하니, 기자들이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서울시에서 지정하지 않겠느냐는 짐작에서 나온 ‘작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믿지 않는 게 좋다. 참고로,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주거환경개선 정책자문단을 운영한 뒤 자문단 결과를 토대로 뉴타운 추가 지정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서울시 정책전문관으로 일했던 필자 판단으로는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서울시장의 뉴타운 추가 지정은 어려울 것이다. 설사 추가 지정을 한다고 해도 매우 극소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뉴타운에 대해서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국토부는 발표문에서 지속적인 공급만이 주택 시장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공급 확대론’을 근거로 대책을 마련했음을 밝혔다. “수요 억제를 통한 ‘불안한 안정’보다는 도심 등 선호 지역에 대한 안정적 공급을 통해 ‘근본적 시장안정’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발표문은 또 “당정은 최근 주택시장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는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가 단기적으로 위축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앞으로도 주택 수요 연간 50만호에 상응하는 공급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국토부의 주택부족론에 기인한 주택 공급 확대론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치에 닿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택보급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았던 90년대 초중반 7년여에 걸쳐 집값이 하락했던 상황이나, 주택 보급률이 110~120%에 이르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집값 거품이 발생하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수요는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만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땡전 한 푼 없는데 아무리 집을 사고 싶다고 집을 살 수 있나? 집을 사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구매력이 있어야 유효수요가 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말 유효 수요가 충분하다면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주택 담보 대출이 200조원 이상 늘었겠는가?
최근 및 향후 주택 공급 상황에 대하여
이미 시장에는 공급 과잉임을 나타내는 징후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현재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과잉임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징표는 미분양 물량 급증과 잇따르는 입주율 저조다. 2008년 6월 현재 미분양 주택 수는 전국적으로 약 15만호. 하지만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여 가구에 이른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기에 묶인 돈만 최소 45조원이다. 악성(惡性)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008년 6월 기준으로 3만5190가구를 기록했다. 5월 기준 2만1757가구보다 약 62%나 급증한 수치다. 더구나 올해 들어 수도권에서 분양한 물량의 25%가량이 모두 미분양이라고 한다.
공급의 시차 효과 때문에 분양 위주의 주택 공급은 발표 당시에는 오히려 투기 심리를 자극한다. 반면 이렇게 한꺼번에 지어댄 아파트의 입주가 한꺼번에 몰리면 집값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물량 들이붓기 효과를 가장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 송파구 잠실 재건축 단지의 역전세난이다. 2008년 8~9월에 1만8000여 가구의 재건축 아파트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했다. 특히 투자 목적으로 산 사람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한때 수도권 부동산시장에서 각광을 받았던 경기도 용인에도 불 꺼진 아파트와 상가들이 수두룩하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는데 들어가 살 수도 없고, 세입자조차 구할 수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수도권의 아파트 공급이 지금도 사실상 초과 상태라는 점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현상이 있을까?
문제는 2008년 이후에도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가 2006년 하반기 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리자 2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내놓은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000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000세대), 광교신도시(3만1000세대), 동탄2신도시(11만 3천 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 외에 검단신도시 6만6000가구, 파주 신도시 3만4000가구, 김포 신도시 5만9000가구, 양주신도시 5만6000가구 등 모두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 5023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 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에서 4만9000가구가 추가로 공급된다.
서울은 어떤가? 우선 뉴타운을 보자. 뉴타운은 사업지 수로는 35개지만 한 사업지역 당 개발면적은 재개발 사업지 평균 면적의 약 40~80배에 이른다. 2008년 7월까지 지정돼 있는 뉴타운 사업지의 총 면적은 27.22㎢로 서울시 행정구역의 4.5%, 시가화 면적의 7.6%에 해당한다. 부천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고, 서울시가 73~2007년 사이 추진한 주택재개발 사업 전체 면적의 1.5배에 이른다. 여기에서 공급되는 물량은 30만호가 넘는다. 여기에 더해 준공업지역 내 아파트 공급도 시작된다. 서울시 전체 준공업지역 면적은 27.7㎢로 뉴타운 사업지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뉴타운과 준공업지역 개발 두 사업만 합쳐도 서울시 전체 시가화 면적의 15%를 상회한다. 물론 준공업지역 전체가 주택단지로 개발되지는 않는다. 산업용 부지를 확보해야 하고 공공 및 공익시설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공장비율이 30% 이상인 곳에는 공동주택이 허용되지 않았고, 10~30%인 곳은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점을 고려하면 ‘계획적 개발’의 조건 아래 공동주택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들 준공업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후로 상당한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에 중앙 정부가 주택 공급 물량을 대폭 더 늘인다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되겠는가?
향후 주택 수요 측면에 대하여
주택 공급 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향후 이들 주택에 대한 충분한 수요층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보통 주택 구입이 왕성한 시기는 35~54세 정도로 잡는다. 보통 30세 전후에 결혼한 뒤 5년 정도 자금을 모은 뒤 35세 전후부터 첫 번째 집을 산다. 이후 40대에 들어 직장 등에서의 승진 등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자녀들이 자라면 넓은 평수로 늘려간다. 이후 50대가 되면 가정 사정에 따라 한두 차례 실제 수요나 투자 차원에서, 또는 출가를 앞둔 자녀들 증여용으로 사게 된다. 이후 55세 이후가 되면 고정 수입이 줄고, 자녀들의 출가 등으로 다시 평수를 줄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베이비 붐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주택수요를 크게 위축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사지 않거나 기존보다 작은 주택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밟는다. 노후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서는 은퇴 세대의 주택 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선두 주자인 58년 개띠들이 2013년을 전후해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베이비 붐 세대의 끝자락에 위치한 74년생이 35세가 되는 2009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출생자 수가 101만(71년)--->87만(80년)--->66만(90년)--->64만(2000년)--->44만(2005년)으로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85만명 전후가 태어났던 78년생이 35세가 되는 시기는 2013년 무렵. 이보다 7년 후인 2020년에 35세가 되는 85년생의 출생자는 66만명 수준으로 급감한다. 결국 2013년 이후부터는 주택 구입 세대가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정년 시기는 52세 전후로 당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감소 여파가 주택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2010년경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이에 더해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보통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인 나라)에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나라)로 가는데 보통 80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2001년 이후 불과 18년 만에 고령사회로 이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일본이 24년 걸렸던 것에 비해서도 6년이나 빠른 속도다.
더구나 78년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절대 숫자에서뿐만 아니라 주택 구매력 측면에서도 앞선 베이비 붐 세대들의 빈자리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세대다. 동시에 2000년 이후 발생한 부동산 거품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받게 된 세대다. 이들의 대부분은 베이비 붐 세대에 비해 경제력이 취약하다. 이들이 기성세대가 빠져나간 주택 시장을 채워줄 수 있을까?이처럼 이번 9.19대책은 한 마디로 최근 및 향후 주택시장의 수급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데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국토부가 이런 황당한 주택 공급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필자가 볼 때 가장 강력한 근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이다. 한 마디로 이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고위 간부도 “국토부에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연간 50만호 공급에 맞춰준 것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어쨌거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대로 실행된다면 집값은 매우 안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거품을 더 키워 거품 붕괴를 막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지만, 현재 국내외 거시경제 흐름을 생각하면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번 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에 계속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잠실 재건축 물량들이 인근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처럼 말이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무모한 정책을 내놓는 정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만 매우 무식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집값은 확실히 떨어질 것 같으니 반겨야 할까?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 씁쓸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발표로 그린벨트 등 일부 개발 대상지를 중심으로 투기 심리에 기대 섣불리 뛰어들지 말기를 바란다. 투기꾼들의 선동에 의해 일부 지역의 가격 상승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집값 버블이 붕괴한 후 상당히 장기간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토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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