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국가와 시장 사이에 또 다른 주인은 '국민'

녹색세상 2008. 9. 30. 12:11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정한 시장주의자’?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공황이 또 올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왔던 이들은 이상적 모델로 믿고 따랐던 미국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를 목격하면서 이미 ‘정신적 공황’에 빠진 듯하다. ‘시장이 모든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각종 규제철폐와 감세,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쳤던 정부와 여당은 ‘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선언한 미 부시 대통령이나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연설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주의 2.0’이라는 토론사이트를 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계화’를 선언하고,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자유주의 개혁정부나 보수정부나 ‘신자유주의’의 모범생으로 불릴만한 정책을 펼쳐왔다. 노무현 정부 또한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한미 FTA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은 ‘왜곡된 시장주의’를 의미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 시장 강자로부터의 자유까지 추구했던 ‘공정한 시장주의자’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2006년 3월에 이미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자’임을 선언한 바 있다.

 

▲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중앙. 캘리포니아)이 2008년 9월 29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하원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안 부결후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원내대표(좌. 메릴랜드)와 램 에마누엘 민주당 코커스 의장(일리노이)을 대동한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때와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지만,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이 공정한 시장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여전한 믿음은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발’이 사회적 약자를 걷어차 버리는 필연적 결과를 마치 별개의 문제인 양 다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로 차별성을 부여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최소한 경제정책 기조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진보개혁 세력들이 우려했던 점은 노무현 정부의 단점(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상대적인 장점(개혁성)은 전면 후퇴시킬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이 예측은 이명박 정권 6개월이 지난 지금,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시장의 실패, 국가 개입이 유일한 대안인가?


보수언론 조차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언을 점치는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국가의 개입’인 듯하다. 미국 또한 초대형 모기지 업체인 패니매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에 이어 AIG 지분인수,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정부기구 설립 움직임 등 경제에 직접 개입하면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추종했던 이들의 뒤통수를 때리며 살 궁리에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흔히 제기되는 국가와 시장 간의 관계문제에 하나의 중요한 주체가 빠져 있다. 바로 국민, 즉 주권의 소재 여부다.


민주주의 체제라면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대신해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은 노동과정과 임금, 상품 등으로 국민의 생활에 개입하는 순환과정을 보장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개발독재 체제나, 민주화세력이 집권했다던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 체제에서도 국가에 대한 국민의 통제는 ‘선거’를 제외하고는 어떤 방식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민주주의 역시 ‘정치 시장’에서 선출된 엘리트들 간의 경쟁이라는 범위로 제한되어 있었고, 국민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소비자로 규정됐다. 따라서 다양한 거버넌스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국민의 의사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대신 미국식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가득 찬 엘리트 관료들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국민으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국가는 이명박 정부의 지난 6개월이 보여주듯, 시장을 통제하지 않는 국가만큼 위험하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기 이전에 민주주의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에 적지 않은 책임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일각에서는 그가 만든 ‘민주주의 2.0’이 전직 대통령의 정치세력화로 귀결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꼭 나쁘다고만 규정할 수 없을뿐더러 ‘소통’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의미 있는 시도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의 자신을 재구성하는 태도는 어떠한 발전적 지평도 열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일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촛불이 던진 민주주의의 의미가 2004년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딱 그 수준만을 의미한다면, 폭락하는 주가지수를 바라보는 만큼이나 허무할 것이다. 자신의 실책이 있었다면 떳떳하게 인정하는 게 옳다. 민주주의에서 소통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과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기 위함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하고 반성해야,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소통을 통해 불붙은 촛불 또한, 이명박 정부를 지지했던 시민들의 반성이 동반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새사연/손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