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라디오를 이명박의 주둥아리로 만들려나?

녹색세상 2008. 10. 13. 19:40
 

라디오를 애용하고 수많은 거짓말을 남겼던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다. 그는 라디오가 대중 선동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말을 받아들여 '라디오 정치'를 적극 활용했다. 1933년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독일제국방송국을 접수했다. 각종 프로그램에 엄격한 검열을 가했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이 나치당의 연례 전당대회였던 '뉘른베르크 집회' 소식을 처음 들었던 것도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나치 당국은 거리에 커다란 스피커를 쌓아 두고 뉘른베르크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당시 라디오는 일반인들이 소유하기에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이에 히틀러는 지멘스나 텔레푼켄 같은 라디오 제작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폭스엠팽어(Volksempfanger. 국민라디오)를 싼 가격에 공급하게 했다. 1933년 이후 7년간 700만대가 보급된 폭스엠팽어는 소련이나 영국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잡을 수 없게 만들어졌고 채널은 겨우 2개였다. 1938년에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라디오 클라인엠팽어가 도입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괴벨스의 주둥이'라고 불렀다.


히틀러 시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라디오가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을 일컫는 이 말은 1930년대 대공황의 고통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을 마치 난로가에서 속삭이듯 설득하고 다독인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의 10일자 칼럼에 따르면 노변정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미화된 측면이 많다. 루즈벨트는 뉴욕 주지사 시절부터 라디오 연설을 했는데, 정적을 향한 강력한 공격 수단으로, 혹은 자기가 제출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압력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이라는 '훈훈한' 이름은 그같은 공격성을 순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루스벨트의 라디오도 히틀러나 부시의 라디오와 다를 바 없는, 정치 선전의 유용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히틀러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루스벨트도 라디오를 통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야 라디오가 아니라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히틀러와 루스벨트, 부시의 사례를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로 라디오 연설을 택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의 첫 방송이 나간 13일 오전, 출근길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 졌을까? 혹시 히틀러와 괴벨스를 떠올린 건 아닐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채널을 돌려버렸을까? 인터넷 시대에 겨우 라디오로 국민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청와대에 들어 가고도 열흘 동안이나 컴퓨터를 켜지도 못한 이명박 대통령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시대의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일 뿐 국민들의 수준은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개인의 착각과 오만은 자유지만 대통령이 그럴 경우 엄청난 여파를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림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