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여간첩 사건 조선일보도 못 믿는데 여권은 왜 난리법석인가?

녹색세상 2008. 9. 2. 10:44
 

원정화씨 진술 내용, 앞뒤 너무 엉성해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른바 한국판 마타하리 ‘여간첩 사건’의 미심쩍은 구석이 너무 많아 사건 실체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경향신문ㆍ서울신문ㆍ조선일보는 1일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해 일제히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지난 8월 31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것을 대부분 인용한 내용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지난 27일 합동수사본부가 이 사건을 발표했을 당시, 3년 전부터 원정화 씨의 행적을 의심하면서도 원씨의 군부대 강연 등을 방치한 정황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 9월1일자 조선일보 기사, 원정화 진술에만 의존한 사건이라고 적혔다. ‘잘해주니까 암살 포기?... 의문투성이 여간첩 (사진:오마이뉴스)


8월 31일 이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연합뉴스의 최선영ㆍ장용훈 기자 ‘간첩 원정화 북한 내 행적 진술에 의문점’은 과연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 자체가 맞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진술 내용이 의심스럽다는 내용이다. 원정화 씨의 의심스런 행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가 근무했다는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는 ‘서기’라는 직책이 없고, 북한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구성된 사로청에 중졸 출신이 배치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원씨는 “낮에는 일상생활을 하고 오후에만 금성정치군사대학(현재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노동당이 운영하는 공작원 양성 전문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이 철저하게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이 역시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이다. 두 기자는 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말을 빌어 “원씨가 사로청에서 근무했으며 사실상 건설노동자집단인 돌격대 간부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공작원 전문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이 아니라 청년 간부들을 양성하는 금성정치대학을 말하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이밖에도 ▲원씨가 특수공작원 교육을 받았다는 특수부대가 평양 모란봉 구역에 있다는 진술 ▲후보당원이 아닌 예비당원을 신청했다는 진술 ▲노동당규약이 후보당원 신청 자격을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만 15세에 예비당원을 신청했다는 진술 등에 대해서도 지금껏 알려진 북한의 실상과 배치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원씨가 공부 등을 잘해서 받았다고 하는 ‘이중영예 붉은기 휘장’은 개인이 아니라 학교나 학급이 받는 것이라는 점 ▲원씨가 '공작원 가족'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어머니가 2년 만에 재혼했다고 주장한 점 ▲북한의 상부가 원씨의 임신사실을 알고도 국내에 침투시켰다는 진술 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원정화 씨가 넘긴 정보 중엔 국가 기밀이 없다

 

‘연합뉴스’는 특히 “북한에서 공작원은 가정 성분을 철저히 보고 뽑는데,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아연을 훔쳐 팔아넘기던 절도범을 정식 공작원으로 내려 보내는 일은 북한의 대남공작 원칙상 상상할 수 없다”는 공작원 출신 탈북자의 견해를 듣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보도에 더해 ▲중국 소재 북한 보위부가 원씨로부터 ‘남측 정보요원이 북한 정보를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일부 자료 제공을 허락하면서도 이 남측 정보요원을 암살하도록 지시내린 점이나 ▲원 씨가 암살 지시와 함께 독침과 발사 장치까지 받고도 남측요원이 자신에게 너무 잘 해줘 암살하지 못한 ‘마음약한 간첩’이란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2건의 절도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고 2년 정도 복역을 했던 원씨가 북한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아연 5톤 절도미수)를 저질렀음에도 5촌 당숙의 도움으로 풀려났다는 진술이나, 계부인 김동순 씨가 북한의 거물급 인사라는 점도 확인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또 “원씨가 북한에 넘겨준 정보 가운데 주요 국가기밀이 없다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라면서 “원씨가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과연 공소유지가 가능할까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원 씨가 북한에 넘겨준 정보라는 것이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군부대 위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원 씨가 과연 북한의 ‘정식 간첩’인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연합뉴스는 이와 관련해 “원씨는 구속 전에 대북무역을 하면서 사기당해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녔으며, 원씨를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남한 실정을 잘 아는 원씨가 몇 년 감옥살이 하고 나오면 몸값을 높여 돈을 벌려고 북한 보위부의 끄나풀인 자신의 북한 내 이력을 과장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원 씨가 남북 양측 정보기관에서 활용한 ‘끄나풀’ 정도 쯤 된다는 이야기다.

 

여권, 때 아닌 신공안 정국 공포 조성하나?


만약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론은 물론 대북 수사당국까지, 비중 있는 여간첩으로 자신의 행적을 치장한 한 탈북 끄나풀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당한 꼴이다. 문제는 원 씨를 오래 전에 대북 정보 수집용으로 활용까지 했던 대북 정보기관들이 과연 이런 사실을 몰랐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보기관의 한 대북 관계자는 수사당국의 발표가 있은 뒤 한 언론사 기자에게 “뭐 이런 엉성한 간첩이 다 있냐”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북 정보 전문가라면 처음부터 ‘각색된 여간첩’이란 사실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경향신문’은 9월 1일 1면 머리기사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계기로 “군부에 침입한 간첩 용의자가 50명이나 된다”는 군 당국 대책회의 메모, “앞으로 공직사회에서 북한 간첩에 포섭되거나 불순한 사상을 지닌 대규모 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발언 등을 전하며 여권이 ‘때 아닌 메카시 공포로 신공안 정국 조성’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역시 무리하고 황당해 보이는 여간첩 사건의 배경을 읽어볼 수 있는 시사점 가운데 하나다. 여간첩 사건 수사 발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까닭이다.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할 정도면 너무나도 허술하고 엉성한 내용이라는 말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공작원(간첩) 사건의 경우 철저한 보안유지를 위해 한 조직 내에서도 담당 부서만 알 정도로 내부 단속을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군사독재 정권 시절도 아닌데 합동수사본부까리 꾸려 발표도 서로 돌아가면서 하는 걸 보면 의혹가는 대목이 많다. 그것도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반대하는 ‘범불교대회’가 열리는 날 발표를 해 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이라며 거창하게 떠들고 남들이 다 알고 있는 북한을 아하지 않는 오세철 박사가 연루된 ‘사노련’ 사건까지 발표 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1997년의 IMF사태(외환위기)가 다시 올지 모른다고 재벌 연구소를 비롯한 민간경제 연구소에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권력이 촛불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이명박 정권이 그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백골단을 동원해 다시 인간사냥에 나선다면 거리 민주주의를 장기간 학습한 촛불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