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 수급권자라 함은 생활 능력이 없어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1조에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어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수급권자의 대다수가 주거가 불안함은 물론이려니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20~40만원으로 이 돈으로 살아가라는 것은 ‘당신은 살지 말거나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라’고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 빈곤의 수렁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정부의 복지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주거가 불안해 언제 길거리로 내 몰려 노숙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렇다 보니 건강은 악화되기 마련이고 살기는 점점 힘들어만 간다.
▲ 인근주택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병동. 우리처럼 ‘혐오시설’이라는 편견이 없어 무엇보다 좋다.
생활능력, 즉 노동능력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해 지원을 해 주면서도 ‘근로능력이 있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복지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증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아닐 경우 무상의료가 아니라 본인 부담금이 적은 ‘을2종’으로 분류해 단 돈 몇 푼이 아쉬운 수급자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다. 수급권자들을 ‘사지가 멀쩡한데 무슨 짓이라도 못 하느냐’며 정부의 도움 받는 것을 ‘게을러터진 인간’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럽 복지 국가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이런 말을 마구 해대니 사회로부터 소외된 약자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몸이라도 성해야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노동을 할 수 없다. 한국의 장애 분류는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기초생활보장법 모두 각각인데다 정말 엉성하기 그지없다. 치료 후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재활치료를 반드시 해야 하지만 인정하지 않아 현업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경우 사고 후 재활치료를 받지 않으면 자동차 보험도 가입을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의무사항으로 분류해 특별 관리를 한다. 초보자를 현장에 투입해 숙련기술자로 만들기보다 아무리 길어도 2~3년 재활치료를 해 현업에 복귀 시키는 게 사회적인 비용이 적음은 물론이려니와 생산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초생활 수급권자 장애 분류는 교통사고나 산재사고와 마찬가지로 운동 장애, 즉 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사고 후유증으로 만성통증에 시달려도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이 아파 사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재활의학과와 통증의학과 의사들이 아무리 말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다. 담당 주치의사가 임상 치료를 통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수 없이 의학 소견을 내도 인정하지 않으니 당사자는 죽을 지경이다. 만성통증에 시달릴 경우 뇌의 전두엽이 찌그러져 정신ㆍ신경계 질환에 시달려 성격마저 이상해 진다.(한겨레21건강 칼럼, 포천중문의대 전세일 교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면 바로 확인 가능하지만 수술위주의 외과 의사들은 ‘붙어 있으면 그만’이라며 괜찮다고 한다. 장애분류 작성을 미세한 통증을 보는 의사들이 하는 게 아니라 의사 세계의 실세들인 칼잡이(외과)들이 하는 것이 문제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 있는 벨리콘 재활병원의 작업장의 모습. 현업복귀를 위한 작업이나 기술훈련을 한다.
우연히 아는 분의 연락을 받고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십대 후반의 남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살아 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쳤건만 7차례의 산재사고와 교통사고까지 겹쳐 후유증으로 인해 온 몸에 근골격계 질환이 있어 힘든 노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접수를 했더니 ‘기초생활수급권자 지정이 어렵다’는 담당 공무원에게 ‘서류접수는 당연한 권리고, 공무원은 회신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며 닥달해 겨우 수급권자로 지정을 받았다. 정부의 지원금은 특별한 외상 즉, 중증장애가 없으면 제 아무리 통증에 시달려 소염진통제를 달고 살아도 30만 원 이하다. 겹친 사고 후유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해 이래저래 생활이 어려운 처지다. 집세를 내지 못 했으니 명도소송에서 당연히 패소해 거리로 나가야 할 형편까지 왔다. 원래 남들에게 줄 주는 알아도 받을 줄은 모르는 성격임에도 워낙 어려우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세를 져 더 이상 손 내밀 곳이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전처럼 도움받기도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의 앞날이 불안한데 지갑을 열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기초생활수급권자격 유지가 가능한 ‘자활근로’를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주택공사에서 매입한 임대주택 입주 신청은 했지만 언제 될지 모르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처지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정부가 주거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국가가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책임지는 게 선진국이지 ‘당신 알아서 하라’는 건 자본과 권력이 걸핏하면 거품 물고 떠드는 선진국이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3개월 주거비 지원을 받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주거 문제가 해결 될 리 만무하다. 후유증으로 인한 만성통증과 정신과 질환 말고는 속병이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집을 비우지 않고 있으니 주인이 ‘부동산인도강제집행’ 신청을 해 강제로 쫓겨날 처지다. 자식 노릇과 부모 노릇은 생각지도 못할 처지임은 물론이요, 모든 인간관가 무너진 상태라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노숙인 쉼터로 가게 할 수는 없어 건설업을 하면서 다세대 주택 임대를 하는 친구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더니 “그런 일 있으면 6월 쯤에 연락하지 지금은 빈 집이 없다”고 한다. 경산 영남대 부근에 주택 몇 동이 있는데 신학기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이사를 해 그때면 되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새로 짓고 있는 다세대 주책은 11월 말이나 12월이라야 입주 가능하니 “11월 초순에 연락하면 비워 놓겠다”는 고마운 말을 빠트리지 않은 친구가 고맙기만 하다. 허탈하기도 하고 당장 눈앞이 막막해 당사자와 둘이 한숨만 쉬었다. 강제집행 날자는 다가오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막막한 건 당연하다. 다행히 목회하는 선배 교회에 빈 방이 있어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죽으라는 팔자는 아니다’며 중년 사내 둘은 씁쓸히 웃었다. 압류 당하고 얼마 남지 않은 큰 짐은 문구 도매를 하는 후배 창고에 보내 놓고 트럭 있는 후배의 도움을 받아 짐을 옮겼다. 길거리로 나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이명박 정부가 각종 복지 예산을 삭감해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긴 자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가 소외된 약자들로 하여금 삶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나마 쥐꼬리만 한 복지 예산을 더 줄이니 이놈의 나라는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의 지옥이요, 이명박은 가난한 국민들에게 사탄 노릇을 노골적으로 해 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순채무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환율 정책으로 몇 달 사이에 200억 달러(2조원)를 공중에 날려 버린 책임자인 강만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채 자리 보존 하고 있다.
허공중에 날려 버린 그 돈을 복지기금으로 돌렸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이 가능함은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가난하고 싶어 가난한 사람 없고, 망하고 싶어 망한 사람은 없다. 사회안전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한경쟁사회에서 밀린 낙오자들을 대한민국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러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은 극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죽을 용기 있거든 살아라’고 하지만 일어설 지팡이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말에 불과하다.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 1위, 몇 년 사이에 급증하고 있는 산재환자들의 자살을 외면하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이 엄청난 사회적인 문제를 외면하고도 ‘국민의 의무’를 떠드는 나라인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본격화된 게 이명박 정권 들어와 노골화 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쥐어짜고 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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