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택 대한체육회 회장님은 말씀이 꽤 길었습니다. 체육회 스스로 공지한 기자회견 시간이 30분이었는데, 회장님은 혼자 말씀으로만 60분을 넘기셨습니다. 질문은 두 개만 받으셨습니다. 이런 기자회견도 처음입니다. 방송 카메라 기자분 중엔, 카메라를 아예 고정시켜놓고, ‘에이’ 하면서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고, 카메라 테이프 하나가 다 돌아가고도 연설이 끝나지 않자 테이프를 갈아 끼우는 방송사 스태프의 얼굴에도 좀 짜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에 나온 우리 선수단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응원하시는 회장님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참으로 피곤한 강행군인데, 선수들 앞에선 그 피곤함을 싹 지우십니다. 회장님이란 자리도 아무나 못 하는 자리입니다.
“건국 60주년, 올림픽 참가 60주년인 올해~”(건국, 광복, 한국에선 꽤 논란이 있었던 말로 아는데, 회장님은 건국으로 통일하십시다), 이렇게 서두를 여신 그 회장님이 60분을 넘기는 강의 속에서 하시고 싶었던 말씀은 선수단이 귀국해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사를 갖고, 카 퍼레이드 또는 도보로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해 환영행사를 여는 건, 일부 언론과 일부 정치권이 얘기하는 것처럼 관영행사도 아니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촛불에 직면했던 정부의 국면전환용 카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행사를 생각한 건 “정부가 아닌 바로 나다”라고 했고, 순수한 것임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회장님의 그런 순수한 의도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국민들을 즐겁게 해준 선수들의 ‘기’도 살려주기 위해 환영공연을 해주는 게 나쁠리 없습니다.
회장님이 아주 서운해 하신 건 ‘박태환 감금’,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선수단, 엄밀히 말해 메달리스트들이 동시 귀국해, 시청 광장으로 이동하는 퍼레이드를 연출하기 위해 선수들을 귀국시키지 않는 건 감금 아닌 감금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까진 생각하는 건 너무하다, 그런 말씀이셨습니다. 올림픽 끝나고 휭, 한국으로 돌아가면, 올림픽이란 문화와 세계 각국 선수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자기 종목, 자기 밖에 모르고 훈련한 선수들이 남아서 여러 체험을 하면 인성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감금이라니, 오해가 안타깝다, 고 하셨습니다. 선수들이 성인이긴 해도, 나이 어린 선수들이 자제력과 판단력이 좀 떨어지는 게 있다. 흔들리는 유혹도 있어 우려가 된다, 여기 남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역도 사재혁, 수영 박태환, 역도 장미란이 선수촌 휴게실에서 TV를 보며 응원하고 있는 모습.
선수들을 폐막 끝까지 남겨 그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 세계선수들과 교류하게 만드시려는 회장님의 의도가 아주 순수하시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한 금메달리스트가 공항에서 귀국하려다 ‘돌아와야 한다’고 해서 선수촌으로 발길을 되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도 최민호는 지난 9일 금메달을 땄습니다. 워낙 말을 아끼는 청년이라 공개적으로 말은 안 해도 체류기간이 좀 길게 느껴질 겁니다. 한 메달리스트와 통화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좀 지겹다”고 얘기합니다. 회장님이 오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미국 수영스타 마이클 펠프스도, 일본 수영스타 기타지마도 이미 자기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안 될까요? 회장님은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의도를 여러 차례 강조하셨지만, 순수한 건 순수한 것이고, 판단이 잘 됐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경기가 일찍 끝난 종목 순서대로 1차, 2차, 3차로 나눠 귀국일정을 만들어주면 어땠을까, 일정기간 문화도 체험하게 하면서 장기간 무료하게 보내는 것도 줄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텐데. 해단식을 겸한 환영행사야, 먼저 귀국한 선수들이 행사장에 잘 모일 수 있도록 해서 아주 멋있게 행사를 치러주면 될 텐데. 예전 올림픽 때도 같이 귀국했다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폐막까지 남겨두려고 하니, 물론 그 의도가 순수하셨다고 하지만 발을 묶어둔다는 ‘오해’를 받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 체육회 한 고위 관계자가 말한 얘기가 기억납니다. “아이고, 태환이 가고, 미란이 미리 가면, 귀국할 때 폼이 나겠어요?”라는 말이 혹시 회장님이 아주 중요한 말로 거론하셨던 ‘스포츠 선진화’가 이런 것인지요? (한겨레/송호진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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