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진중권, ‘검찰의 맹구 같은 논리, 너무 실망’

녹색세상 2008. 7. 31. 17:40
 

            나를 너무 실망시킨 검찰

 

‘프레시안’ 기자로부터 검찰 발표문에 내가 이 게시판에 올린 글이 인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검찰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았으니, 그 신뢰에 힘입어 이번 검찰의 발표에 대한 평을 남겨야겠다. 검찰이 인용한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PD수첩’ 측의 해명뿐 아니라 검찰의 주장도 함께 들어봐야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제 검찰이 들고 있던 카드를 내왔으니, 이제 새로이 관전평을 해야 할 것 같다. 미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가 그토록 믿고 기대했던 검찰이 나를 너무나 실망시켰다. 그래도 ‘뭔가 있으니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추측했는데, 발표문의 주요 내용을 아무리 찾아봐도 새로운 얘기가 없다. 그 동안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기저기 흘렸던 얘기들의 종합판일 뿐. 심지어 내가 이 게시판에서 사적으로 나눈 대화 글까지 떼다가 수사결과에 실어 놨다. 나는 그래도 검찰의 수사에 성과가 있기를 기대했는데, 검찰이 한 일이 고작 검찰에 기대하는 진중권의 말에 기대는 것이라니. 이런 개그가 또 있을까? 그것도 떡밥이라고, 검찰이 달려들어 덥석 물줄은 몰랐다. 그 말 듣고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검찰의 전략은 내가 판단하기에 가랑비로 옷 적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테일의 개수를 늘린다고 대마를 잡을 수 있겠는가? 140쪽이나 된다는 그 질의서는 나에게 양적인 인상을 주지만, 정작 내가 검찰에 기대했던 질적 인상을 주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기서는 검찰의 발표와 그 동안 보수언론의 보도에서 당장 눈에 띄는 논리적 무리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그 전에 일단 가장 근본적인 사실부터 확인해 두어야겠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 ‘PD수첩’의 보도의 취지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의 취재 의도는, 미국산 쇠고기 협정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짚어보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환자 한, 두 명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민동석 차관의 발언은 사태의 본질을 충격적으로 보여 준다. 방송의 결과, 쇠고기 협정이 졸속으로 체결된 것이 드러났고, 그 때문에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고, 부랴부랴 추가협상이 이루어졌으며, ‘90점’이라는 정부가 매긴 점수만큼 국민들이 광우병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더 안전해졌다. 이것이 ‘PD수첩’이 발휘한 사회적 공로다.

 

핵심적인 논점은 ‘왜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가능성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두 가지 하위 논점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에 관한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한 논란이다. '단정'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는데,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병명에 관해서도,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해서도 단정을 한 바 없다. 빈슨의 병명은 ‘부검결과가 나와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다우너에 관해서도 ‘물론 저 소들이 다 광우병에 걸렸다고 볼 수는 없다’는 멘트가 나온다. ‘단정적’이라는 말은 이보다 좀 누그러진 표현이다. 의역과 오역의 문제는 주로 이 부분에 집중된다. '단정했다'는 동사는 가부를 명확히 가릴 수 있는 문제. 하지만 '단정적'이라는 형용사는 사실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언표의 뉘앙스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데에 사용되는 수사학에 관련된 술어일 뿐이다. 방송에서 단정을 한 적이 없고, 명시적으로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확정되지 않았고(그것은 논리적으로 CJD와 vCJD일 가능성을 모두 허용한다), 다우너소가 모두 광우병소인 것은 아니라는 멘트가 나간 이상, 결국 뉘앙스의 강약을 문제 삼아 물고 늘어지겠다는 얘긴데, 이는 논리적으로 별 가망이 없어 보인다.

 

아레사 빈슨의 병명과 다우너소의 증상에 관해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 그중 왜 광우병만 부각시켰느냐 하는 것. 검찰이 범하고 있는 가장 큰 논리적 무리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아레사 빈슨이 걸렸을 수도 있을 병명들, 다우너 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질병들 중에서 당장 현안이 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이 있는(relevant) 것이 바로 광우병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이 상식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 ‘PD수첩’의 보도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무엇인가’에 관한 방송이 아니었다. 만약 아레사 빈슨의 진단명에 관한 방송이었다면, CJD나 vCJD 중에서 아무래도 확률이 높은 CJD쪽을 더 많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CJD가 도대체 PD수첩에서 문제 삼은 미국산 쇠고기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미국의 언론도, 국내의 언론도, 심지어 정부 당국자도 아레사 빈슨이 인간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는데, PD 수첩에서 그 가능성을 언급하면 안 되는가? 더욱이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되는 이상, 이 사안과 관련된 의심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의 보도는 ‘다우너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은 무엇인가’에 관한 방송이 아니었다. 다우너 증상을 일으키는 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한국의 소비자가 가장 우려하는 가능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광우병에 걸렸을 위험이다. 그런데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다우너까지 식품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도축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문제를 인정하고 새로이 다우너의 도축을 금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문제의 영상이 원래 '동물학대'에 관한 것이었다는 지적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이 담긴 화면이 원래 교통 카메라에 찍힌 것이었다고 그게 증거로 인정이 안 되는가? 미국에서 그 영상이 일으킨 커다란 사회적 패닉도 학대당하는 동물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논점은 하나다.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수입되는 쇠고기 중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없는가.' 제대로 된 방송이라면, 당연히 그 가능성을 끝까지 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PD수첩에서 한 일이다.

 

검찰의 인식에는 방송의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의 주제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무엇이었느냐', '다우너 증세를 낳는 질병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어야 하는 한국의 소비자 입장에서 꼭 짚어봐야 할 가능한 위험성에 관한 방송이었다. 그런 취지를 가진 방송에 대고 ‘왜 광우병의 위험만 일방적으로 강조했느냐’고 타박하는 것은 한 마디로 토끼 보고 넌 왜 고기 안 먹고 풀만 먹느냐고 따지는 맹구 같은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관한 몰이해다. 'PD수첩'과 같은 방송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뉴스와 달리 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한 방송이다. 그런 방송은 문제의식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당연히 방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방향성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수사적 과장이 지나쳤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것은 그저 미용의 실수(Schönheitsfehler)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번 발표에서 너무나 축어적인 아레사 어머니의 인터뷰를 뒤집을 만한 실체적 증거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새로운 게 없다.

 

그 동안 검찰이 했던 얘기 중에서 그나마 내가 기대했던 것은 MRI 결과를 설명하는 영상에 관한 부분이다. 이번 발표에서 검찰이 뭔가 증거를 내놓을 줄 알았는데, 결국 그 부분은 그냥 추측으로 남을 모양이다. 추측을 수사결과라고 발표하는 것의 적절성에 대한 얘기와는 별도로, 검찰에 걸었던 내 기대가 허무하게 좌절된 허탈감은 어쩌란 말인가? 나는 검찰에서 뭔가 카드를 갖고 있기에 그런 얘기를 흘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카드를 까고 보니, 그냥 그것은 추정일 뿐이고, 그 추측이 틀린다면 네가 스스로 해명하라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취재 원본을 공개하라’는 검찰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취재 원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자유의 문제’다. 인터뷰가 언제라도 검찰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면, 누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려 들겠는가? 이제까지 선례도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해놓고 상대방이 안 받아들이면, ‘뭔가 캥기는 게 있어 그러는 게 아니냐’고 받아치겠다는 얘기인가? 자신들이 지난 한 달 간 했던 검찰의 수사 자료의 원본도 공개를 하고, 수사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했는지 검증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 캥기는 게 없다면, 공개 못할 일도 없지 않은가. 이 얼마나 썰렁한 얘기인가.

 

보도를 보니, 정부에서 해외공관에 정부가 언론사를 고소 고발한 사례를 조사해 바치라고 요구했단다. 그런데 불행히도 해외에서 그런 사례를 단 한 건도 찾지 못했단다. 다만 미국에 한 가지 판례가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실제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설령 보도 내용이 일부 틀렸다 해도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PD수첩이 정운천 장관이나 민동석 차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실제적 악의를 가지고 방송을 했다’는 추정이 상식적으로 얼마나 개연적일까? 해외공관에서 취득한 첩보의 결과 정부에서도 이 공방이 법정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겨우 수사의뢰라는 편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내가 이 사태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가 한 가지 있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이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검찰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국제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진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