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의 입을 막으려는 정부
시내 한복판에서 두 달이 넘도록 시위가 계속되고 많은 사람들이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체포되었다. 전경버스 양쪽에 밧줄을 매고 시위대와 경찰이 줄다리기를 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촛불집회를 불법이라고 몰아붙인 정부의 장관마저도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겠다고 집회현장에 나올 정도였으니, 원래 국민을 대표해 정부 관리에게서 보고를 들어야 할 국회의 권위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재판받는 사람들의 변호인들 입에서 ‘저항권’ ‘시민불복종운동’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정상적인 사법작용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해결되어야 한다. 문제는 과연 어떠한 해법이 올바른 것인가이다.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 7월 8일 오후 2시 검찰청 앞에서 열린 ‘PD수첩 >표적수사 정치검찰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정부는 촛불집회를 몇몇 사람들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정보를 왜곡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는 듯하다.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발병 위험성이 극히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을 비롯한 일부 언론에서 그 위험성을 과장했고 일부 네티즌들은 ‘광우병 괴담’을 유포하면서 특정 언론기관에 대해 광고 중단운동을 펼쳐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인식 하에서 법무부와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을 수사하면서 취재테이프 원본의 제출을 요구하고, 광고 중단운동을 주도한 네티즌을 조사하는 한편, 더 나아가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추진하고 포털 규제를 강화하는 등 법률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정확한 현실 판단이 결여된 것으로서, 올바른 대응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사태는 정부의 주장처럼 언론보도나 네티즌의 글이 잘못된 정보(만일 잘못된 것이었다면)를 전달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쇠고기협상이 불투명하게 이루어졌고 그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도대체 어떤 경위로, 어떤 절차를 거쳐 초단기간에 쇠고기협상이 전격 타결되었는지, 광우병 위험 때문에 수입해서는 안 된다고 정부 스스로 주장하던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안전한 것이 되었는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두 달 이상 동안 우리나라 전체를 혼란과 반목에 몰아넣은 책임은 일차적으로 이렇게 졸속협상을 체결한 사람들에게 있다. 만일 충분한 준비과정과 여론수렴을 거쳐 협상이 진행되었다면 이런 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왜곡은 정보의 부재에서 생겨난다. 정부에서는 ‘PD수첩’ 방송으로 인하여 소위 ‘광우병 괴담’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다. 설사 방송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협상과정에서 여론이 충분히 수렴되고 정보가 공개되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킨 협상이 이렇게 조급하게 체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이렇게 졸속으로 협상을 체결하게 된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일이 선행되지 않은 채 협상에 의구심을 표시하거나 광우병 위험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효과도 없거니와, 사법작용에서 최우선으로 확보되어야 할 도덕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 엽서무더기 경찰서 파출소장, 검찰의 펑검사 등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항의엽서(사진:참여연대)
비상식적 강압수사로 얻을 것과 잃을 것
일반 네티즌에 대한 수사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기관에 근무하는 기자나 PD는 보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고, 문제될 소지가 있을 때는 변호사의 검토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전문가를 대상으로 할 때도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는데, 하물며 일반 시민들을 조사할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하기도 하고, 다수의 네티즌에게 일괄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으며 더 나아가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네티즌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정보의 유통으로 인한 개인의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것보다는 아예 인터넷상의 정보흐름을 규제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정당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부작용만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상에서 자기주장을 펼치다가 수사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네티즌들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외국에 있는 서버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정말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들에 대한 토론이 구글이나 야후재팬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다음이나 네이버는 조용하기를 바라는가? 실제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정부의 대응에는 문제가 많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사 혹은 특별형법 등의 입법에 따라 예상되는 효과를 보자. 대통령이 사과할 정도로 심각한 결함을 드러낸 협상에 대해서 그 책임규명은 미룬 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만 사법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누가 과연 승복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 부작용은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검찰이 광고 중단운동을 벌인 네티즌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명으로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자신을 체포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던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이런 반응을 받으면서 수사를 강행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클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사태 해결방안을 찾아라
수사의 목적은 법질서 위반행위를 바로잡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인데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범법자임을 공언하면서 조사받겠다고 나서는 상황에서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수사가 성공(?)해서 인터넷이 일시에 조용해진다고 해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회적인 논란을 공권력으로 해결하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사법기관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 비판하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마다 검찰에 나가서 자기의 주장이 정당함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쇠고기 수입협상의 졸속 타결은 우리 사회를 격랑에 빠뜨렸고 새로 출범한 정부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고 다시는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수사기관을 동원하고 특별입법을 추진하여 당장의 비판을 잠재우려고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국민의 마음에 골만 깊어지게 하여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는 일이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금태섭)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찰, 백골단 부활, 기자도 강제 연행 (0) | 2008.08.05 |
---|---|
진중권, ‘검찰의 맹구 같은 논리, 너무 실망’ (0) | 2008.07.31 |
경찰에 끌려가는 촛불시민들 (0) | 2008.07.30 |
10년 만에 부활한 백골단과 나가떨어진 시위대 (0) | 2008.07.30 |
검찰, “중간수사 발표 아니다”면서 ‘의도적 왜곡’ 몰고 가 (0) | 200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