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6월을 넘어 7월까지 이어진 촛불집회 기간 동안 우리에게 ‘폭력’과 ‘비폭력’이란 단어는 큰 화두가 되었다. 시위자들은 평화시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비록 소수의 시위자들이 폭력적 행동을 벌이긴 했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비폭력’을 외치는 옆 동료들에게 제지되어 다행히 큰 불상사를 면하곤 했다. 몇 명의 전경과 보수신문 취재기자에 대한 집단 폭행이라는 유감스러운 사태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과거의 대형 시위와 비교했을 때 대다수 시위자들의 투철한 비폭력 의식이 매우 두드러졌다. 이 정도 규모의 시위대가 반대쪽에 이렇게 적은 수의 부상자를 낸 것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부와 보수언론은 마치 시위자들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그들에게 물리력과 언어를 통해서 폭력을 계속 행사해 왔다. 국회의원과 초등학생까지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며,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한 데 대해 정부는 어떤 도덕적 명분을 주장할 수 있는가?
▲ 6월 29일 새벽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들이 경찰들과 대치를 벌이던 가운데 경찰의 강제진압이 시작되자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 연행되고 있다. ‘미란다원칙’ 고지와 같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명시된 것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키지 않았다. (사진:오마이뉴스)
그리고 비폭력에 대한 대다수 시위자들의 집요한 의지를 외면한 채 일부의 폭력 장면만을 보도해온 보수언론들은 과연 독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역사상 ‘비폭력’에 가장 깊은 애착을 보인 시위를 불법화시키고 매도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은 역사의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를 연구해 보면 흥미로운 등식을 발견하게 된다. 민중적 반항의 폭력성은 지배자들의 폭력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콜롬비아와 같이 부자들의 민병대가 훈련 시간에 가난한 농민들을 묶어놓고 사지를 잘라내는 살인 연습을 하고 1년에 극우 테러단과 군대와 경찰의 손에 무고하게 죽는 운동 지도자들이 약 100명에 달하는 지옥과 같은 사회에서 민중 쪽에 “게릴라 전쟁을 하지 말고 비폭력 원칙을 지키라”고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차별적이고 인륜을 파괴하는 폭력이야말로 그쪽 지배자들의 일상적인 지배방식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난해 3월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철거를 당해야 했던 일부 아나키스트와 자율주의자 등이 과열시위를 일으켰을 때 철거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좌파들조차도 시위대의 폭력적인 투쟁방법에 대해서는 질타했다.
국가가 평소에 그 폭력적인 본질을 어느 정도 숨긴 채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면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반항도 어느 정도 비폭력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1960년 4월과 달리 성난 군중들에게 몰매를 당해 시위 현장에서 맞아 죽는 경찰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와, 80∼90년대와 달리 화염병과 각목이 시위 현장에서 대량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보수주의자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컫는 지난 10년 동안에 한국도 어느 정도 기존의 폭력 지배의 방식을 완화하여 반항하는 이들이 “비폭력”을 외칠 만한 수준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ㆍ노무현 집권 기간에도 농민과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한 진압이 살벌할 때가 많았지만 적어도 중산계층 위주의 대중성이 있는 시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신사적 태도’를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권이 이 기본적인 노력마저도 포기한다면 시위 모습도 역시 결국 80년대 형태로 회귀하게 돼 있다. 정권이 정녕 이것을 바라고 있는가? ‘폭력시위’ 운운하기 전에 시위자들을 ‘민란을 일으키는 불순한 종자’가 아닌, 나라의 엄연한 주인인 시민으로 대우하기를 바란다. 얻어 터지고만 있을 사람은 세상 어디에고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최루탄과 경찰의 폭력에 대항해 방어 수단으로 던진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지금 ‘시위대의 폭력’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겨레/박노자 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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