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b 없는 대한민국 상상할 것”…현장 모금 5천만원
서울시청 앞 광장에 쏟아진 것은 폭우뿐이 아니었다.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성격과 생긴 것들이 다른 수십만 명이 모여 연출해낸 장관이 감동이 돼 광장을 휘몰아치는 듯했다. 16세 여학생의 자유발언과 수배 중인 대책회이 관계자들의 연설 내용도 모든 이들을 공감의 밧줄로 치렁치렁 엮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국민승리 선언문의 내용도 사람들을 뭉클하게 했다. 광장에 나온 수십만 명의 시민과 전국에서 함께 한 수많은 촛불들, 그리고 마음 속의 촛불을 한 자루씩 켜고 광장과 거리를 지켜보는 광장과 거리의 바깥에 있는 더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승리를 선언했다.
“이웃의 아픔을 눈 감아야 내 가정이 살고, 옆집 아이를 짓밟아야 내 아이가 이기는 무한경쟁에 찢겨 지역과 계층으로 모래알처럼 갈라졌던 우리가 경찰의 방패에 찍히고도, 다시 일어나 함께 달려오는 동안 피를 나눈 혈육처럼 하나가 되었으니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 재협상은 반드시 이뤄진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자. 그 사랑스런 사람이 바로 촛불저항의 영웅들이자 곧 쟁취할 승리의 주역이다. 조금만 더 힘을 모아 앞으로 평화의 바다로 나가자.”
촛불 69일이 만든 역사
두 달을 한결같이 달려왔다. ‘쇠고기 재협상’을 외친 지 69일째, 횟수로 59번째가 되는 7월 5일. 이미 1500여 명이 부상당하고, 968 명이 연행되고, 9명이 구속됐다. 물대포에는 ‘온수’를 외쳤고, 몽둥이찜질에는 맨몸으로 맞섰고, 명박산성을 넘기 위해 맨 손으로 흙을 파 국민토성을 쌓았다. 촛불 문화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역사를 만들어갔다. 찌는 듯한 더위와 장맛비 속에서도 주최 측 추산 50만여 명의 시민들은 ‘폭력의 아비규환’이었던 그 거리에 또 다시 모여 의연하게 촛불을 들었다. 이는 지난 ‘6.10항쟁기념 촛불대행진’의 이후 최대 규모이다. 또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서 모금한 모금액의 중간 점검 결과도 5천여만 원이 넘은 것으로 집계돼 촛불의 질긴 생명력을 실감케 했다.
이날 문화제는 탤런트 권해효 씨와 최광기 씨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여느 때처럼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촛불을 기록한 동영상 상영 및 다양한 문화행사로 채워졌다. 박다슬 양은 “우리는 전문 시위꾼도 맞고 폭도도 맞다. 그런데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폭도를 본 적이 있느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짓을 했기에 촛불이 두려운가요? 촛불은 이깁니다. 69일 동안 촛불을 함께 들어준 사랑하는 언니, 오빠, 선생님,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영주 씨는 “아이들이 미래의 주인이라는 말이 아주 싫다. 왜 미래에 저당 잡혀 오늘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야 하나? 바로 오늘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지키고 싶다.”면서, “당장 7월 30일을 쥐 잡는 날로 선포해 촛불이 심판하는 날이 되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 명숙씨는 “정부는 종교의 힘은 두려워하지만 시민의 힘을 아직까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금 피곤하더라도 끝까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폭력과 싸우자”면서, “더 이상 폭력-비폭력이라는 조중동의 논리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싸움하자”고 호소했다.
경찰이 최악의 진압을 했던 지난 29일 새벽 경찰의 폭력으로 중상을 입은 이학영 YMCA 사무총장은 이날 팔에 깁스를 한 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촛불이 나오면 미안해 하고 촛불이 시들어지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오는 게, 이명박은 전두환보다 더하다”며 “전두환보다 못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정권의 버릇을 고쳐놓자”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민은 과거 총칼과 계엄령으로도 짓밟히지 않았다”면서 “정부는 이제 무서운 국민에게 항복하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없는 대한민국 상상하게 될 것’
또 이날은 수배 중이던 국민대책위 관계자들이 어렵게 무대 위에 올라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한용진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데, 기저귀를 갈고 또 우니 추가협상이라는 가짜 젖꼭지를 물리고, 몽둥이로 때린 뒤 그래도 안 되니 감방에 가뒀다”면서 “재협상만이 아이의 눈물을 그치고 촛불을 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생명과 건강을 지키려는 국민들에게 이명박 정권은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이는 촛불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뜻”이라며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다면 이명박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촛불문화제는 대한문 하늘 위에 띄워놓은 대형 풍선에 걸린 ‘미친소, 미친정권, 2MB’ 현수막을 ‘전면재협상, 촛불이 승리한다’로 바꿔 거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마무리됐으며,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행진’이라는 원칙 아래 남대문-을지로-종로를 지나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이어간다. 가두행진에는 시민사회단체 대표, 4대 종단 지도자들, 민노, 민주, 진보신당 등의 국회의원들이 ‘인간방패’로 선두에 나섰으며, 그 뒤에는 2백 여명의 ‘평화지킴이’들이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경찰은 만약을 대비해 190여개 중대 전의경들을 배치했으며, 지난 종교계 평화행진과 마찬가지로 행진로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날 오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대표단이 청와대의 책임 있는 사람에게 국민 요구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청와대 측이 전달받기 어렵다고 밝혀 첫 대화 시도가 무산됐다.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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