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그를 분리수거할 수 있게 됐다’
촛불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민주공화국이라고 믿는 선한 시민에서부터, 집회장에서 청춘을 누려온 전문운동가들까지. 유모차에 태워진 아가들부터 수녀님들, 예비군 형님들, 할머니들까지. 헤아릴 수 없이 폭넓은 스펙트럼의 촛불들을 반격하기 위한 대오는 의외로 간결하다. 우리는 이를 강렬한 세 컷의 장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갑제의 어린이 영혼추행범, 방송사에 가스통을 들이대는 고엽제전우회, 그리고 이문열의 촛불장난과 의병이 그것이다.
내뱉는 말마다 진심으로 그 영혼의 무늬가 궁금해지는 조갑제의 발언은 과연 그의 명성을 줄기차게 이어가게 하는 그것이었다. 고엽제전우회 아저씨들이 선택한 가스통도 극우의 선정성을 그 보다 더 잘 드러낼 순 없었을 듯한 적당히 화끈한 그림이었다. 우리를 진정으로 잠시 놀래 킨 것은 이 두 장면 보다 한 술 더 떴던 우리 시대의 작가 이문열에 이르러서다. 명색이 그는 작가였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사법고시의 답안지를 적어내듯이 정확하게 재단된 소설공식으로 풀어내는 글로 독자를 쥐락펴락 하는 실력에 대해서는 한동안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던 그가 아니던가. 새삼 글로 다시 옮겨 적기도 싫어지는, 산소가 부족한 뇌에서 나온 듯한 그의 표현은 단지 그가 사상의 오른쪽 극단에 서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착시의 징후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처음 언론에서 그의 발언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몹시 민망스럽게도, 길에서 자신의 아랫도리를 버젓이 드러내고 여자들 앞에 나타나는 변태성욕자를 마주쳤을 때의 황당함과 역겨움이었다. 대개 50대 후반의 나이에 얼굴에는 번들거리는 기름이 흐르는 그 아저씨들은 자신의 직설적인 저속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상대방을 욕보이고, 거기서 쾌락을 취한다. 이 땅의 맑고 맹랑한 여학생들이 촉발시키고, 하이힐부대, 유모차 부대가 온 가족을 광장으로 이끌어내, 거대한 평화적 시민혁명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어쩌면 한국이 세계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사의 한 갈피를 숨 가쁘게 써가고 있는 이 시점에 그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저속한 어휘로 이 아름다운 시간을 그저 욕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변태성욕자 이문열
문득 8년 전 보아버린 한 장면, 이후, 이문열이라는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안에서 쓴물이 솟구치게 하던 그의 소설 ‘아가(雅歌)’가 떠올랐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당편이라고 하는, 정신과 몸이 불편한 한 여성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중년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화자(話者)와 그의 친구들이 당편이에게 성추행과 조롱을 하는 장면이 마치 구수한 고향의 정취라도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우리가 성적인 측면에 집착한 것은 그녀의 불행을 즐기는 잔혹 취미가 아니라 불완전한 그녀의 성적 기호를 보완해 주는 의미가 있었다고. 우리는 진심으로 그녀의 여성성을 승인했으며 방법은 달랐지만 틀림없이 그녀를 한 여성으로 사랑한 것이라고” 교활하고 세련된 언어로 이문열은 중년 남성들의 성희롱을 승화(?)시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자신의 조악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홍위병 발언으로 젖소부인과의 유착관계를 한동안 형성하던 그가, 이번에는 '홍'자만 슬쩍 뺀 <의병>발언을 했다. 오늘의 집단난동을 의병들이 진압해야 한다! 고.
창작의 샘이 고갈되기라도 한 듯, 한동안 중국 고대소설만 옮겨 적는 걸로 과업 삼더니, 그의 정신은 여전히 먼지 날리던 고대 중국의 만주벌판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걸까. 범여성계의 분노를 촉발했던 소설 ‘선택(1997)’에서 “시 짓고 글 쓰는 일은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안채와 부엌을 떠나지 않고 여자의 본업을 하겠습니다”는 식의 표현으로 조선 사대부 여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집밖을 나대는 여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던 그가 조선일보를 위협하고, ‘명박산성’ 아래서 깔깔거리며 국민엠티를 즐기는 여인네들을 보고 최소한의 이성을 상실한 것일까.
이문열, 분리수거 가능하게 되다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입증해준 통렬한 역설은 이를 진압하려는 그 모든 세력들이 오로지 촛불에 기름을 한 드럼씩 릴레이로 부어주는 일에 기여할 뿐이며, 불나방처럼 촛불을 능멸하려 달려드는 순간, 자신을 감춰주던 포장을 잃고 적나라하게 실체를 노출하게 된다는 데 있다. 7.4%로 지지율이 내려앉은 이명박과 그 와중에도 계파 갈등에 여념이 없는 거대한 지리멸렬의 집단 한나라당은 더 이상 자신을 숨길 곳을 잃었고, 조중동, 경찰, 미국, 그리고 이문열도 이것으로 기나긴 위선의 세월에 깨끗한 종지부를 찍었다. 제법 심각한 어조로 ‘계속 이렇게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서 조선일보의 장사를 방해하면, 우리가 민형사상의 절차를 밟아 다칠 수가 있을 테니 아줌마들 알아서 하쇼’ 하고 조선일보가 82쿡닷컴에 보낸 공문은, 숱한 여인들이 “조선일보가 보내서 왔다”며, 서버가 다운되도록 하루 종일 82쿡닷컴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조선일보, 아줌마들을 건드려! 너희들 다 죽었쓰..." 하며 회심의 미소를 가입 인사로 타전했다.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을 위대한 작가로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손쉽게 조갑제, 고엽제전우회와 나란히 그의 이름을 분리수거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문제는 받아치기도 귀찮을 정도의 저급한 수준의 몇몇 인간들이 한국의 '우파'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 나머지 모든 정치의식이 있는 부류를 좌로 구분하는 기계적 분류가 횡행하니 노무현에서 부터 주사파까지 한국의 좌파는 참 발 딛을 틈도 없이 바글거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 자리가 그리 탐나나
홍세화 선생이 일찍이 한국 언론계에 대해 일갈한 바대로, 상식이 없는 부류, 상식이 있는 부류가 있을 진데, 굳이 자기네들이 우파라고 우기니 애꿎은 사람들이 모두 좌파 아니면 좌파의 선동에 넘어간 어리석은 이들로 엮이는 이분법의 야만에 대적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이문열 망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또 하나의 세간의 추측은 개각의 폭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명박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한 제스처란 것이다. 자신보다 한참 수준 낮은 소설가 김한길도 지나갔던 문화부 장관 자리를 삼국지, 열국지에, 초한지까지 고대 중국의 고전을 섭렵하며, 영웅들이 전하는 권모술수의 핵심기술을 익힌 그가 차지해서, 한 번 구사해 보고 싶을 수도 있었겠다. 60평생을 그가 탐해온 것이 결국은 권력이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까지 하며 정치권을 기웃거렸던 이문열이 아닌가. 난국에 이미지 구겨가며 센 발언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으려 했던 그 애틋한 마음을 그 분은 아실까. (레디앙/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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