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길을 가거나 버스 안에서 갓난아기나 어린 아이들이나 조카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얘야 우리는 너희가 독재에 억눌리지 않고 분단에 짓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위해 오늘 싸우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 이루지 못하면 너희가 우리를 이어 싸워가겠지. 자라서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의롭고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최루탄 마시고 피눈물 쏟으면서도 ”우리 자식들은 이런 고생하지 않는 세상에 살겠지“라는 소망을 늘어놓곤 했다.
요즘 촛불 시위에 왔다 가면서 문득 그때 일이 생각나며 혹여 그때 나와 눈으로 대화를 했던 아이들 중 자리에 있는 아이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좋은 세상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우리의 후대는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삶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쟁취해 만드는 것임을 내 주변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보면서 배운다. 그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한 사회구성원이 되어 윗세대와 소통하며 한 자리에 앉아 민주를 이야기하고 자주를 이야기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대를 넘은 소통이란 나이를 떠난 동지란 사실이. 의성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쌍둥이 딸들에게 애비로서 할 수 있는 게 촛불을 드는 것 말고는 없어 이렇게 촛불을 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할 수는 없다”고. 나 역시 할 수 있는 게 촛불을 들고 ‘미친 소고기 너나 처먹어라’며 고함지르는 것 말고는 없어 가슴이 무너진다. 좀 더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웠더라면 ‘한미FTA’란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투쟁했더라면 진보정당을 향해 손을 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지만 우리 자식과 조카들을 지키기 위해 싸움의 대열에 한 다리 걸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누리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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