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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앵커는 그리도 개념이 없는가?

녹색세상 2008. 5. 17. 00:46

MBC 김주하 앵커가 순복음교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사회를 봤다고 한다. 자그마치 신도 12만 명이 운집한 행사였다. 김주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은 ‘너무나 당연히’ 논란을 낳았다. 그에 대해 김주하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종교 활동까지 못하는가? ..... 돈을 받고 영리목적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도 아니고 내가 집사로 소속된 교회의 행사에 봉사목적으로 참여한 것을 문제 삼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 아나운서국이나 보도국에서도 교회 행사에 사회를 보는 이 같은 일은 드물지 않게 있어온 일 .... 나를 유독 문제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 ..... 매주 교회에 가질 못하니 이런 기회에 내가 가진 달란트로 봉사한 것 뿐”


사건을 보는 관점이 ‘영리행위-종교의 자유, 봉사’다.


김주하 앵커에게 개념탑재를 요청한다. 신도 12만이 운집해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거행한 순복음교회 행사였다. 한국사회에서 순복음교회는 권력이고 기득권이다. 그곳에서 12만 명을 모아 위세를 떨쳤다. ‘순복음교회 -12만 명-올림픽주경기장‘으로 연결된 키워드에서 느껴지는 건 거대한 힘, 위압감이다. 가난하고 천한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그들의 구원과 맞바꾸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도 어렵다던 그 예수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물론 봉사와도 다른 이미지다. 한국사회에서 순복음교회는 대통령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 모두의 정치적 권력이 합쳐진 힘이다. 그 힘도 순복음교회를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순복음교회는 강하다. 한국 기독교의 대형교회는 최근 들어 부쩍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특정 정책에 대한 호불호를 명확히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학법이다. 사학재단의 투명한 운영을 거부하는 집회에 십자가가 등장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기독교를 단지 하나의 순수한 종교일 뿐이라고 생각하기가 힘들다. 현직 대통령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던 분이다. 현 정부 실세 그룹의 핵심 키워드로 특정 학교와 함께 특정 교회가 등장했다. 명문대의 행위가 모두 학문의 자유가 아닌 것처럼 대형교회의 행위도 모두 종교의 자유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명문대도 대형교회도 한국사회에선 이미 권력이 됐다. 그리고 명문대와 대형교회를 관통하는 것은 돈, 기득권이다. 이것은 명백히 정치적인 것이다.


앵커에게 이런 정도의 개념도 없다는 말인가?


어느 평범한 조그만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미 권력이 돼버린 대형교회, 그중에서도 초대형교회인 순복음교회의 초대형행사에 김주하 앵커가 ‘얼굴’로 나선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비판을 ‘종교의 자유’로 받아치는 것은, 서울대가 본고사의 자유를 학문의 자유라고 우기는 것 이상으로 우스운 일이다. 이것이 한국 최고 뉴스 앵커가 할 말인가? 순복음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권력으로서의 교회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이것은 예수의 기독교와는 전혀 별개인 한국 사회만의 맥락이다. 미국 앵커도 아니고, 프랑스 앵커도 아니고 한국 앵커에게 이런 기초지식도 없다면 곤란하다. 특정 교회 행사 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종교의 자유’로 받아치는 건 외국 앵커가 일반론으로 할 말이지 한국 앵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영리행위가 아니므로 괜찮다고 하는데, 한국사회는 대형교회를 영리행위와 무관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대형교회는 영리(돈)와 정치적 이해가 만나는 장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자신이 행위자이기도 한 것으로 인식된다. 개인적으로 돈을 받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은 1차원적인 생각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사회적 맥락이라는 보다 복잡한 차원의 인식을 한국 앵커에게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김주하 앵커에게 개념탑재를 거듭 요청한다.

 

종교의 이념은 피안의 것이되 현실로서의 종교는 사회적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역사에선 피가 흘렀다. 중세의 천주교, 고려의 불교, 제국주의 침략기의 기독교 등이 그랬다. 종교와 권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시도 결국 학살을 저질렀다. 영혼으로 신을 섬기는 행위와 12만 명을 모아 위세를 과시하는 행사에 얼굴로 나서는 행위를 구분할 수 있는 ‘개념’ 이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명심할 것은 조용기 목사가 움직일 때 마다 25~30명의 보디가드들이 붙어 다닐 정도로 경호를(?) 한다는 사실이다. 목사가 도대체 어떤 짓을 했기에 그 정도의 경호를 받아야만 하는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 그 정도의 개념조차 없는 사람이 방송의 앵커를 한다면 세상 공부다시 해야 한다. 교회 갱신이나 기독교개혁과 관련한 단체에 전화 한통이면 바로 알 수 있다. 김주하 앵커의 맹성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