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20대 초반 여군 부사관의 하소연

녹색세상 2008. 4. 25. 21:21
 

회식이 제일 싫어요.


그는 20대 초반의 여군 부사관이다. 첫 통화에서는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몇 시간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술을 조금 마셨다는 그가 어렵사리 입을 떼기 시작했다. 1시간여 동안 이어진 통화에서는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가 말한 ‘어린 여성 부사관의 군 생활’을 그대로 전한다. 우리는 회식이 제일 싫어요. 회식 때마다 쉰 살쯤 된 원사들이 “딸 같다”며 옆에 앉혀요. 그러고는 허벅지도 만지고, 등쪽 라인도 쓰다듬어요. 엉덩이도 툭툭 치고…. 언제, 몇 번인지 기억할 수도 없어요.

 

신임 하사 때부터 지금까지 술 마실 때마다 그래요. 주로 다른 사람들 정신없을 때 손이 쑥 들어와요. 술을 따르라거나 옆에 앉힐 때는 늘 ‘장기’나 ‘연장’을 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요. (부사관은 의무 근무 연수가 3년이다. 2년째에 3년 더 근무할 수 있는 ‘연장’ 심사를 하고, 5년째에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장기’ 심사를 한다. 최근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심사의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꼭 지휘관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라고 하죠. “꼭 그래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너 이런 거 안 하면 어떻게 ‘장기’가 되겠어?”라고 말해요. 내가 군인이지 술 따르는 사람입니까?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원사가 얼굴을 쓰다듬기에 “이러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더니 그 원사가 “그러니까 내가 둘이 있을 때 그러지”라고 말하더군요. 아예 만지는 상황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뭘 했다고 이러냐”라고 발뺌해요. 어이도 없고 숨이 탁 막혔어요. 그때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꼈어요. 내가 뭣하러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여기 있어야 하나…. 그런데 막상 지금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친구들 보면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돼서 대학원에 간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저는 꿈이 군인이었어요. 원래는 장교였지만, 부사관이 됐죠. 같은 여군 고참들한테 얘기해봤죠. “증거가 있는 게 아니잖아. 괜히 말하면 너만 망신당하고 쫓겨난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면 참으라”고 하더군요. 다들 참는대요. 사실 언젠가 휴대전화로 녹음을 했어요. 만지고, 내가 거부하는 상황을. 그런데 잡음이 많아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어요. 대놓고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비슷한 일로 고충상담 장교를 찾아갔어요. 이것저것 물어보고 끝이었어요.

 

상담 말미에 “잘 넘기고, 나중에 우리가 고위 장교가 되면 이런 일 없도록 하자”고 말하데요. 참, 웃음만 나옵니다. 그리고 여군 화장실도 없어요. 병사들이랑 같이 써요. 남군이 볼일 보는 것? 비일비재하게 봐요. 솔직히 병사들 알몸도 본 적 있어요. 병사들 처지에선 병사들이 성희롱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에게도 그건 엄청난 성희롱이에요.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까 병사들이 샤워하면 아예 화장실 근처를 안 가요. 병사가 많아서 샤워 다 하는 데 5시간은 걸려요. 5시간 동안 화장실 가고 싶은 거 꾹 참았던 적도 있어요. 여군 장교가 있는 부서는 화장실도 따로 있던데, 너무 서러워요. 최근에 사무실 개축 공사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여자 화장실은 안 짓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얘길 한다고 군대가 바뀔 수 있을까요?”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