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나눔의 기쁨

녹색세상 2008. 4. 24. 22:13
 

우체국을 이용할 일이 있으면 대구은행역 옆에 있는 수성우체국을 자주 간다. 지하철역 바로 옆이라 가기도 좋고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메일에 저장해 놓은 것을 출력해 편지를 보낼 수 있고, 내용증명을 보낼 때는 복사기를 이용할 수도 있어 참 편리하다. 이제 우체국마다 영업 경쟁이 붙어 고객 유치가 치열하다. 선거철이면 선고공보물 발송 유치를 위해 각 정당마다 연줄을 대기도 한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편리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고객의 편의를 위한 좋은 서비스’라고 칭찬을 몇 번했더니 직원들의 입이 벌어진다.

 

 

오늘은 엘지카드(신한합병)에서 난데없이 전화가 왔다. 신용카드는 없애 버린 지 오래되지만 통장 잔액 범위 내에서 사용가능한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행사기간’이라며 ‘우수고객에게 주는 혜택이 있는데 의향이 있느냐’고 한다. 결국 돈 더 쓰라는 얘기인데 큰 부담이 안 되고 해서 좋다고 했다. 방송대 학생증으로 만들었는데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등기우편물도 보내고 카드 재발급도 할 겸 편리하고 접근이 용이한 수성우체국으로 갔다. 이메일에 저장한 것을 출력도 하고 법원에 제출할 서류도 복사할 수 있으니 한 곳에서 몇 가지 일을 보는 셈이다.


일을 보고 있는데 낯이 익은 얼굴이 있어 자세히 보니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을 한 친구였다. 재작년 지방선거 때 개표 참관인으로 들어갔을 때 만나 ‘경북체신청에 근무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같은 건물인 수성우체국에 와도 늘 시간이 어중간했고 일년 정도는 울릉도로 전근을 가 있어 만나지 못했다. 동기들 안부도 묻고 ‘민주노동당 탈당하고 진보신당 갔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우체국 민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직원들 대부분이 신분 불안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민영화 했을 경우 사용료가 인상될 것은 뻔하고 그 ‘피해와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우정사업은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보편적인 서비스’인데 이것을 민영화 해 ‘수익사업으로 가져간다는 발상 자체가 좋지 않다’며 공무원노조에서 대응을 고민 중인데 공무원 신분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 고민이 많다고 한다. 예전과는 달리 공무원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음에 시간이 맞으면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고 나가려는데 무슨 보따리를 하나 준다. ‘방문객 기념품’이라는데 제법 묵직하다. 내용물을 보니 비누와 치약 등 생활용품이라 반월당역에 내려 놀러가곤 하는 곳으로 갔다. 빨래 비누와 의류린스는 막걸리 같이 마시곤 하는 박병준 당원 댁에 드리고, 치약은 몇 일전 사진을 잘 찍어준 청년의 어머니에게 전했다. 사진을 찍어보니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그림을 전공한 사람답게 솜씨가 좋아 주위에 권해도 좋을 정도로 잘 했다. 어머니가 장사하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손님을 대하는 것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었다. 내 돈 내고 찍는 사진이지만 기분 좋게 찍고 나니 아주 흡족했다.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집에 뭔가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셨던 아버지, 풍족한 살림이 아니었음에도 손이 큰 분이었다. 할머니를 모셔 집에는 늘 손님이 많았다. 사촌 큰 형수가 시집 온 후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참 잘 했다. 명절에 인사는 기본이고 철 따라 농사지은 걸 집안 최고 어른께 드린다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오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아버지는 제법 두툼한 봉투를 형수에게 주셨다. 너무 두터워 놀라는 형수에게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고 할머니가 주시는 거다. 어른이 주면 받는 게 아래 사람의 도리다”며 바로 기선을 제압하곤 하셨다. 백부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시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불쌍한 며느리라며 질부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다. 조카들을 꾸지람은 해도 ‘우리 집에 와서 고생한다’며 며느리들은 늘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경우에 어긋났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져 형수들은 어려워하면서도 아버지를 시어른 대하듯이 했다.


받을 줄은 모르지만 남에게 주는데 인색하지 않은 아버지, 며느리들의 허물이 눈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덮어주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덕에 이 정도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다. 형편이 여의치 못해 한 동안 나누지 못하고 살았는데 오늘 친구 덕분에 조그만 것이긴 해도 나눌 수 있어 기분 좋은 하루였다.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친구 녀석에게 청탁해 재량권 범위 내에서 몇 개 얻어 사랑의 빚을 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눔의 기쁨’을 갖도록 해야겠다. 나눔의 즐거움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 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이런 부모를 만난 것은 하늘이 주신 복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