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이건희 퇴진…승계문제는 빠졌다

녹색세상 2008. 4. 22. 14:22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삼성 특검수사에 대한 후속조치로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회장직에서 전격 퇴진키로 발표하자 삼성 안팎에서는 술렁임이 끊이지 않았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5분께 삼성본관 지하1층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이학수 부회장만을 대동한 채 나타났으며,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짤막한 성명을 3분 동안 발표한 뒤 자리를 떴다. 기자회견장에는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허태학 삼성석화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등 40여 명의 삼성그룹 사장단이 일제히 참석했다. 사장단은 이 회장의 성명 발표 30여 분 전부터 회견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초조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특검에 갈 때 ‘삼성이 잘못한 게 없다’고 목에 힘을 준 이건희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재용에 대한 승계문제는 빠져 있다. 이건희가 모든 걸 포기한다고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회견에서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드리면서 이에 따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및 등기이사, 문화재단 이사 등 삼성과 관련한 일체의 모든 자리에서 사임한다는 뜻이라고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인 이학수 부회장은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미 11일 특검팀 조사를 받고 나오는 길에 그룹 경영체제 쇄신 검토 및 자신의 책임의사를 밝혔으나 삼성측은 이 회장 자신이나 경영진의 퇴진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해왔다. 그런 탓에 회견장에 자리를 함께 한 사장단과 임직원 등 100여명의 삼성인사들은 예상보다 파격적인 이 회장의 결단에 고개를 숙이거나 큰 숨을 내쉬는 등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회장의 전격적인 회장직 퇴진 발표에 대해 일부 취재기자들조차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결정’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이순동 사장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심정을 밝히고 싶지 않다”면서 “삼성 전 직원들이 회장님이 없다는 데 대해 충격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삼성 관계자는 “삼성그룹에서 차지하는 이 회장의 지배력과 경영능력, 의사결정 역할 등을 고려할 때 2선 후퇴 가능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회장직 퇴진 및 삼성 쇄신안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은 당초 23일 예정돼 있었으나 삼성 내부자들에게조차 이날 오전 7시30분께 통보됐을 만큼 비밀리에 전격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견에는 200여명의 국내외 취재기자들이 몰렸으며, 기자회견은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해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또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사내방송을 통해서도 생중계돼 18만여명의 국내 근무 직원들 중 상당수가 이 회장의 퇴진 순간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진보신당은 이건희 회장 퇴진이 포함된 삼성의 경영 쇄신 발표와 관련 22일 논평을 내고 “쇄신안 발표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재용씨 경영 승계 취소와 이건희 일가 경영 해체로 이어지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즉 이건회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그리고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의 퇴진 등은 환영할만한 사안이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영권 승계 문제가 빠졌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비열하게 치밀한 삼성은 호시탐탐 불법 경영승계를 시도할 것이 뻔하다”며 “삼성은 이번 기회에 노동자 등 이해 당사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진정한 민주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