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고소영 불도저, 시동 걸자마자 바퀴 뻥....

녹색세상 2008. 3. 3. 17:48
 

“한마디로 최악의 인사 종합세트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인사청문회도 하기 전에 3명의 줄사퇴로 만신창이가 된 이명박 정부 첫 내각을 이렇게 평가했다. 두달여의 밤샘 작업으로 엄선했다는 이명박 정부 첫 내각 인사는, 검증 시스템은 물론이고 장관 인선을 대하는 기본 인식, 정무적 판단과 대처 능력 등에서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일부 각료들을 교체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질 성격이 아니란 점에 있다. 각료들의 잇단 사퇴가 이명박 정부에 입힌 내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크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의 국정 운영에 타격을 받는 게 불가피해졌다.

 

 

정권 출범기엔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주요 국정과제들을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각료들의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면 정권의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앞에 다가온 4ㆍ9 총선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점도 이 대통령에겐 매우 큰 부담이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선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가 필요한데, 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과 정권 초기부터 껄끄러운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우선 이 대통령 쪽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꼽힌다. 10여명의 인선팀이 5천여명의 인사파일을 놓고 검증했다지만, 위장전입이나 투기성 부동산 거래 등 기초적인 사실조차 지나쳐버렸다.


이명박 후보 캠프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인사를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진행했고, 어느 한쪽 측근에게만 힘이 실리다 보니 내부적으로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보다는 첫 내각이라는 중요한 인선작업에 임하는 이 대통령 쪽의 기본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더라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실용주의’라는 명목으로 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머릿속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전력을 지닌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안팎의 논란에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임명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다. 이 대통령 쪽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수도권과 영남 일색으로 임명해놓고도 “가까이 데리고 일할 비서진 아니냐”며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자신이 도덕성 논란에도 ‘일 하게 해 달라’며 당선됐으니, 장관들도 흠결이 있어도 능력이 있으면 국민들이 용납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 쪽의 정무적 판단과 대처능력도 커다란 문제점을 노출했다. 지난 10년간 한나라당 스스로 장관 인사청문회의 기준을 한껏 올려놓은 데다, 4월 총선이 있어서 한나라당도 이 대통령 편만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쪽은 장관 후보자들의 의혹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도 “청문회를 보고서 판단하겠다”는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 교체 문제를 놓고 ‘처음부터 야당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 같다”며 “이 대통령 주변에 정무적인 경험과 감각을 갖춘 인물들이 적은 탓에 일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한겨레/황준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