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죄악이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겁니다. 30대 중반 이상 활동가들은 뇌뿐만 아니라 몸에 각인되었을 줄 압니다. 정월 초 이튿날 텔레비전을 보다 변호사가 담당 검사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소리를 뒤에서 들은 윗 사람이 ‘협상 그만 두게’, ‘하면 안 됩니까?’, “자네 뭣이 가장 나쁜 줄 아나? 폭력을 묵인하는 건 가장 나쁜 짓이야”라는 대사가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나와 직접 얽혀있지 않다고 해서 폭력을 묵인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소매치기야’라는 말에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위험한 장면을 보면 몸을 던질 정도로 ‘무모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그만한 체력이 있었고 학창시절부터 운동을 해 운동 신경이 발달한 탓도 있었겠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가까이 벌어진 폭력을 알고도 침묵을 지킬 정도로 양심이 무뎌갔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직접 겪은 피해가 아니니 넘어간 것’이고 ‘복잡한 일에 얽히기 싫어 계산기 두들긴 아주 얄팍한 잔머리 굴린 짓이죠. 피해자는 가슴을 두들기며 아파하는데 ‘무죄추정주의 원칙’을 들먹이며 뻔뻔하게 고개 쳐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도 ‘이건 아니다’며 고함 한 번 지르지 않았습니다. 언론 비평가 강준만의 말처럼 ’실명비판‘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양심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침묵한 주위 사람들을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폭력이 통하고 제소를 당한 상태에서 돌아 다녀도 묵인하는 ’폭력의 문화‘가 원망 서러울 따름이죠.
폭력을 당해 오랜 시간 가슴앓이 한 피해자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빌고, 같은 약자로서 침묵의 밀약을 지켜본 여성동지들에게 ‘한 번만 용서하시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한다면 어떤 욕을 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아도 할 말 없습니다. 폭력을 알고도 ‘좋은 게 좋다’며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은 동지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묵인한 잘못에 대해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한 두 번의 실수를 할 수 있으나 실수한 사람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피해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폭력은 내재화 되어 있어 언제 또 다른 형태로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폭력을 묵인하는 순간 피해자의 가슴이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병은 깊어지기 전에 치료해야지 묻어 두다 상처가 커지면 고치기 힘듭니다. 특히 ‘조직 내의 폭력을 묵인하는 것은 가장 나쁜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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