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 붙자는 말이냐.”
“실적을 평가해서 연봉을 차별화하고….”
“일부 사원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며….”
최근 몇 년 동안 참 많이 들어본 소리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싸워서 이겨야 평가받는 세상. 주변에서 이처럼 ‘거친 말’이나 ‘위협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반작용 때문일까. 최근 서점가에는 칭찬과 기대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즐비하다. ‘시크릿’ ‘해피어’ ‘긍정의 힘’ ‘몰입’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올라있다. 오로지 실적을 위주로 평가하던 기업에서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당장 눈앞의 구체적인 수치보다는 직원들을 어떻게 하면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남을 깎아내리는 거친 말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사회성도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건국대병원 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비난이나 위협은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피로를 불러 온다”며 “칭찬이 결핍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최근에는 대중적으로 칭찬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 없던 잠재력도 끌어낸다는 칭찬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여기, 스스로를 칭찬하는 사람부터 부부끼리, 또는 동료끼리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로부터 칭찬의 효과와 노하우를 배워본다.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
개발도상국의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을 돕는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나눔운동 모금팀장 이아영 씨.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은 ‘나와의 데이트’를 즐긴다. 동료도, 친구도 없이 혼자 서점이나 갤러리를 찾아 책을 읽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 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가끔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기도 한다. 이 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이 소진돼 간다는 느낌이 들어 나를 격려하는 이벤트가 필요했다”며 “누구라도 자신과 데이트를 해보면 시간과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광고대행사 웰콤의 이상진 기획국장은 2006년 12월 대기업 계열의 한 생활용품 회사 광고 수주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8만 원짜리 만년필을 자기 자신에게 선물했다. 모든 ‘광고장이’가 그렇듯이 이 국장도 10년 넘게 정답이 없는 아이디어 싸움을 하고, 마감 시간에 맞춰 기획서를 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일을 끝내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남편을 위해 투자했던 시간을 보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남에게서 받는 칭찬은 의례적일 수 있지만 스스로 칭찬하면 훨씬 기운이 난다”며 “1년에 한두 번 내게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면 기분이 좋고 늘 함께할 수 있는 품목들로 칭찬 상품을 구성하면 좋다”고 말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수고했어’라는 한마디에 행복 두 배, 능률 세 배. 파스퇴르유업 인사총무팀 구철회 대리는 지난해 도전했던 사내(社內) 금연프로그램에 성공해 회사에서 10만 원짜리 백화점상품권을 받았다. 예전에는 공짜 상품권이 생기면 부모나 조카에게 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에 돈을 더 보태 38만 원짜리 산악자전거(MTB)를 샀다.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기 위한 것이다. “32년 인생에서 무언가 결심하고 이를 이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구 대리는 대견한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 주고 싶었다. 요즘 그는 하루 1, 2시간 MTB로 운동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회사원 김철준ㆍ양문영 씨는 서로를 칭찬하는 부부다. 결혼 생활 8년 동안 기념일마다 “다툼 없이 살아줘서 고맙다”며 칭찬의 선물을 한다. 2005년 결혼기념일에는 그동안 서로에게 보낸 편지를 책으로 엮기도 했다. 남편의 생일에 아내는 관광지마다 찍어둔 부부의 뒷모습을 액자에 담아 ‘늘 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 보냈다. 언젠가는 ‘감사장’을 만들어 보낸 적도 있다. 처음에 아내에서 남편으로 향하던 일방통행 식 칭찬은 이제 부부의 대화수단이 됐다. 지난해 화이트데이 때 남편은 이승환의 ‘세 가지 선물’의 가사 내용에 맞는 부부의 사진을 동영상 파일로 담아 음악과 함께 아내에게 선물했다. ‘처음 이 노래를 들려줬을 때의 서로 사랑하던 마음이 여태까지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칭찬의 힘과 비난의 힘
개인뿐만 아니다. 홍보대행사 레브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부터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다음 날은 결과와 상관없이 관련 직원을 칭찬하는 ‘몸 푸는 데이’를 연다. 타이 마사지 숍에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동해 바다로 달려가 회를 먹곤 한다. LG마이크론은 팀마다 ‘비타민 씨(氏)’를 한 사람씩 임명해 이벤트 개최 등 조직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기획을 맡긴다. 칭찬 쿠폰을 운영하는 회사도 많다. 미국의 인적자원관리협회가 매년 주관하는 인재관리 국제콘퍼런스의 화두도 최근 몇 년 동안 직장 내 행복관리를 어떻게 할 것 인가였다. 매년 하위 10%의 구성원을 퇴출시키는 등 ‘성과관리’로 유명한 제너럴일렉트릭(GE)조차 요즘은 직원의 기를 어떻게 하면 잘 살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LG경제 조범상 연구원은 “기업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조직원들을 공정하게 평가해 보상하는 방법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지나친 성과주의 때문에 조직의 피로도가 쌓이다 보니 조직원을 칭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칭찬은 어떤 힘이 있기에 개인도 기업도 이렇게 노력하는 것일까? 기대와 칭찬의 힘은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로버트 로젠탈 교수 등이 연구한 ‘피그말리온 효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37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지능지수(IQ) 검사를 한 뒤 이 중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아이’로 담임교사에게 통보했다. 무작위로 뽑았기 때문에 20%에는 진짜 뛰어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섞여 있었다. 이렇게 하니 원래는 뛰어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교사의 기대를 받은 아이는 8개월 뒤 실제로 IQ가 높아졌다고 한다.
회사 상사가 특정 부하에 대해 성과가 나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자네는 그거밖에 안 되나”라는 말을 자주 하면 똑똑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실제로 업무성과가 떨어지게 된다. 인사관리 담당자들은 이를 ‘가혹화의 오류’ 또는 ‘낙인효과’라고 부른다. 서울백병원 정신과 김원 교수는 “칭찬으로 인간의 행복감과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을 주장하는 마틴 셀리그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해외 저명 심리학자들이 최근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제는 선진국처럼 구성원의 행복과 복지 문제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칭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 뻔히 아는 가족이나 동료를 눈앞에 두고 칭찬을 하자니 쑥스럽고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 칭찬은 ‘무임 승차자’를 양산해내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칭찬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자녀라면 아이가 공감할 수 있는 만큼만 칭찬해주는 게 좋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신민섭 교수는 “밥상을 차릴 때 숟가락을 놓아주거나 동생을 잘 데리고 놀았을 때 등 명백한 상황에서 칭찬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쳐서 속상해하고 있는 자녀에게 “괜찮아”라고 한다면 자녀도 부모가 솔직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신 “엄마가 이렇게 속상한데 너는 얼마나 속상하고 실망했겠니. 하지만 다시 기회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잘해 보자”라고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직장 동료를 칭찬하려면 칭찬 받을 행동을 한 그 자리에서 진심을 담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게 효과적이다. 늘 칭찬받는 부분이 아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던 변화를 끄집어내 하는 칭찬이 효과가 크다. 자신을 칭찬하려면 하루에 하나씩 자신의 장점을 찾아 일기로 써본다. ‘칭찬 잘하는 아내’ 양문영 씨는 “처음에는 대가를 바라고 칭찬하다 나중에는 칭찬받는 남편을 보는 내 스스로가 즐거워 칭찬하게 됐다”며 “칭찬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꾸 해야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곧 설이다. 기업들의 승진 및 보직이동 인사도 잇따라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에게 진심을 담아, 또 승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담아 칭찬을 전해보자.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소외된 마음쯤이야 훨훨 털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동아일보/하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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