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진보를 바라며
국가보안법이나 성차별, 비정규직 등에 대한 입장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나누곤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KTX 승무원들이 해고 되는 것에는 반대하면서 노조에서 자기 나이 좀 많거나 지위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버마 민주화를 위해 다른 단체들과 어울려 활동을 하면서 버마 민주화보다는 자기 단체 이름 내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그 사람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우리는 진보나 좌파 또는 여성주의 등 각종 정치적 입장이나 이론을 주장하면서도 그야 말로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내가 지 종이야?’ ‘저러니깐 운동을 말아 먹는 거지’ ‘캬, 진보 좋아하시네. 저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 봐라’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려고만 드는 거야?’하면서 실망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속에서 상처 받아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도 더러 있죠. 희망을 갖고 함께 꿈을 키워가자고 만나서 희망은커녕 실망감과 배신감을 키운 경우가 많다면 진보가 스스로를 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내리는 비를 가려주는 우산과 그 우산을 전해주는 사람들 [사진:최민식]
물론 진보나 운동이라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한 동네는 아닙니다. 그저 사람 사는 동네이고, 사람 사는 동네이다 보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 스스로를 갉아 먹으며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되짚어 보고 반성하고 바꿔가야겠지요. 그래서 진보에 대한 기준을 달리하면 좋겠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을 권력이나 자본에 대한 입장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 사람과 자연에 대한 태도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면서도 자기가 가진 권위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됩니다. 노동해방이나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조직간 주도권 싸움에 바쁜 사람은 보수가 됩니다. 나이 많다고 찻잔 하나 씻지 못한다면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한나라당과 우리는 달라’라고 외쳐도 그들은 한나라당과 한 편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힘 약한 이들을 업신여기거나 짓누르고, 남을 이용해 자신을 높이며, 같은 조직에서조차 저 말대로 되지 않으면 미치는 것과 같이 사람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정치적 입장에서는 아닌 척 해도 보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콩 심은데 팥이 나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그에 비해 억눌린 이들을 위한다면 명분이야 뭐가 됐든 망설임 없이 자신을 쏟을 줄 알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잘 해 보자고 자신을 숙일 줄 아는 것과 같이 사람에 대한 태도가 진보적인 사람은 설사 당장에는 정치적 입장이 보수적일지라도 언젠가는 진보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깊은 샘에는 맑은 물이 마르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입장은 생각으로도 할 수 있고 선언만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도는 구체적인 관계와 상황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에 생각이나 선언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보다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좀 더 힘을 쏟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혁명을 향하여
사회는 사람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까칠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까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여유롭고 따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회 제도가 만들어져도 그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이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 사회 제도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억압적인 사회 제도도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혁명이라는 것도 사회 제도의 변화를 포함하면서도 넘어서 사람의 변화로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놈의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물건처럼 가만히 있다면 바꾸는 것도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라는 것이 한 순간도 가만있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만나 ‘야! 좋은 일 하는 것도 좋지만 너도 이제 나이도 있고 친척들 보는 눈도 있는데 옷도 좀 갖춰 입어야 되지 않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 내가 좀 거시기 했네. 돈이 좀 들어도 옷 한 벌 사야겠네.’라고 생각 합니다.
▲ 서천 [사진 : 강요배]
또 ‘야! 아무리 좋은 옷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렇게 못 먹어서 아픈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 내가 그동안 좀 무관심 했던 것 같네. 쟤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계속 흔들리는 거죠. 그게 사람입니다.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말 들으면 이랬다, 저 말 들으면 저러는 존재입니다. 계급적, 성적, 인종적 위치에 따라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판단하는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계속된 변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란 없는 거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수령이나 부처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 제도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는 혁명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은 사람의 세상을 바꾸는 혁명도 멈추는 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성된 혁명이나 이상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변화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끝없는 변화의 과정들만 있을 뿐인 거죠. 그래서 좋든 싫든 혁명은 영원한 것이죠. (민중의 소리/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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