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은 24살처럼 보이기 위한,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동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악한 왕비는 늘 최고의 미인이 되길 꿈꾼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끊임없이 거울에 질문을 던지지만, 거울은 엉뚱하게도 ‘백설공주’ 이름만 댄다. 현대 사회에선 거울이 아니라 TV와 컴퓨터가 묻지 않아도 알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매일같이 보여주며 우리를 자극한다. “당신은 지구에서 3,328,345,923번째로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전형적인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자는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를 ‘전형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동춘서커스의 한 단원이 분장을 하고 있다.
매력적인 여성이 한 명도 없었던 이유
그렇다고 대한민국과 할리우드 연예인들에게 모조리 독약이 들어 있는 사과를 먹일 순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을 해치려는 시도 대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신경을 쓴다. 근사한 옷을 입고, 화려한 귀고리를 하고, 예쁘게 화장을 한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미용과 성형, 패션 비즈니스는 지난 50년간 어떤 산업보다도 각광받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 예로, 인구가 2억5천만 명에 달하는 브라질에선 에이번(Avon)이라는 미국 화장품 브랜드의 뷰티 컨설턴트 집단이 군대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거울 앞 각축전이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변한 것이다.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자기 연출’이나 자신의 ‘가치 표현’이라는 거부감 없는 표현으로 포장해 상업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화장은 미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의 마르틴 그륀들 박사와 그 동료들은 ‘뷰티체크(Beautycheck)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이 어떤 외모에서 매력을 느끼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여러 여성 사진들을 제시하고 사진 속 인물들을 매력적인 순서대로 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남성들한테서 엉뚱한 질문이 날아왔다.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이 한 장도 없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연구자들이 제시한 사진들 가운데는 모델 사진도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은 패션잡지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적인 얼굴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들이 갖게 된 ‘미의 전형’도 화장이나 패션을 빼놓고선 생각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그들이 개설해놓은 뷰티체크 인터넷 사이트(www.beautycheck.de/)에 들어가 온라인 실험에 참여해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엔 한때 우마 서먼이나 캐서린 제타 존스 같은 스타들의 ‘화장 전후 사진’을 비교한 ‘before and after’ 코너가 큰 인기를 누렸는데, 그걸 보면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간단한 화장술이 얼마나 우리를 기만해왔는지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다. 몇몇 여배우들은 도저히 우리가 아는 그 스타라곤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판이하게 달랐는데, 연예인의 고교 졸업사진이나 수술 전 사진에 익숙한 우리나라로선 그리 놀랄 만한 소식도 아니다. 인간이 화장을 시작한 것은 굉장히 오래된 일이다. 기원전 3천년에도 주검이나 동굴벽화에서 화장을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종교적인 제술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지만 배우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 또한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꺼비에게 두꺼비 닮은 사람이 최고
오늘날 화장은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데,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로 간주되고 있다. ‘러브 사이언스’의 저자 만프레드 타이젠은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전형적인 얼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에서 찾는다. 사람들 머릿속엔 전형적인 얼굴이 들어 있어 사람의 성별이나 정체성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취한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볼테르가 “두꺼비 수컷에게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꺼비 암컷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얼핏 미인은 우리와는 매우 다른 얼굴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면밀한 조사 결과 ‘전형적인 얼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평균적 외모가 오히려 ‘미인’으로 평가되더라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꺼비 수컷에겐 김태희나 전지현보다 ‘두꺼비를 닮은 사람’이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진화심리학자들에게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남성들에게 자신이 사춘기와 폐경기 사이에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화장술이 목표로 삼는 나이는 여성이 임신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아기를 정상적으로 낳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24살이다. 그보다 어린 여성이 화장을 하면 오히려 나이 들어 보인다. 광대뼈 아랫부분에 어두운 톤의 블러셔를 바르면 어린아이와 같은 통통한 볼이 가냘파지면서 성숙미를 풍기게 된다. 30살 넘은 여성들은 눈 밑에 컨실러를 톡톡 두드려 바른 다음 완전히 펴서 눈가의 주름이나 다크 서클을 감춘다. 셰어나 카일리 미노그처럼 ‘나이를 잃어버린 연예인’들은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고 박피로 깨끗한 피부를 얻었다고 해도 아이섀도와 컨실러로 눈가의 주름을 가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립스틱은 성적 매력을 배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보인다. 입술은 대화의 최전선에 있으며 성행위에 앞서 체액이 합류하는 최초의 장소이기도 하다. 풍만하고 매끄럽고 윤기 나는 입술은 모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술인데, 이것은 오랫동안 다산의 상징으로 간주돼왔으며 원활한 난소 기능을 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립스틱은 전 세계에서 도난 비율이 가장 높은 물건 중 하나라고 한다.
립스틱, 세상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는 물건
많은 사람들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이 야만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분개할 것이다. 나 또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는 데에는 몇 가지 과학적인 근거들이 있는데, 그중 주목할 만한 하나가 뉴캐슬대학의 연구 결과다. 크레이그 로버츠 박사 연구팀은 배란 활동을 암시하는 징후들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의 얼굴을 배란기 직전에 한 번 촬영하고 배란기가 끝난 뒤 다시 한 번 촬영해 이 사진을 남성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결과 많은 남성들이 배란기 직전의 얼굴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배란기가 시작되기 전에 여성들은 입술이 약간 두툼해지고 빨갛게 변하며 동공이 확장되고 피부색이 뽀얗게 바뀐다. 그런데 화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여성을 배란기 직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화장의 의미는 5천 년 전 우리 조상이 화장을 하는 것과는 사회적 맥락이 많이 변했다. 화장의 본질은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한때 우리 미래가 별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안다. 그것이 우리 유전자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제임스 왓슨의 이 말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말인지, 아직 탐구는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21/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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