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어깨가 축 처진 젊은이들

녹색세상 2008. 1. 17. 10:50
 

  ‘요즘 젊은 애들’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걸 보니 나도 슬슬 ‘꼰대냄새’가 나는 전조증상인가 보다. 입에 달고 살지는 않아야 될 텐데 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처져 있고 동작 느린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눈알이 번득이는 청년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랐다는 교회의 대학생들과 학생당원들을 비교해 본다.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더 눈에 들어온다.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가 수능시험을 치고 입당한 학생당원은 세상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게 보인다. 연말 대선 장사가 죽을 쑤는 바람에 기운 빠져 있다가도 그런 젊은이들이 있어 기운이 솟구치곤 한다.

 

 

  비슷한 연배의 젊은이들이 처져 있는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모든 문제는 이유가 있고, 병도 단순히 바이러스 감염이 아니라 환경과 환자의 생활습관에서 원인을 찾는 게 ‘명의’이듯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열 받기 그지없으나 분명 사연이 있다. 앞날을 생각하면 ‘뿌연 안개’만 있을 뿐 전망이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널린 게 대학생이라 ‘소나 개나 대학생’인 게 요즘이다. 학력의 상향을 욕할 수는 없지만 필요 없는 사람도 대학을 가는 게 문제다.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워낙 심하니 안 그럴 수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전제조건임에 분명하다.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면 머리 터지게 입학시험 칠 이유가 없다. 자본과 권력은 이렇게 줄 서서 ‘간택’을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리 없다. 흩어져 있는 것을 일일이 뽑으려면 신경을 좀 써야 하는 게 사실이다.


  온 몸에 기운이 넘쳐 발산하지 않으면 병이 날 나이인 10대를 유혹하지 않고, 20대의 마음을 훔치지 않으면 진보진영의 인력 충원은 없다. 후진이 없는 집단은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소멸해 가기 마련이다. 기운처진 젊은이들의 눈이 번뜩이고,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대열에 동참하는 꿈을 꿔 본다. 그런 꿈은 꿀수록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이른 새벽부터 학교에 가서 밤 10시가 넘어 학교를 나와 다시 학원으로 가면서까지 경쟁해야 하는 현실, 옆의 친구가 함께  해야 할 동반자요 동지가 아니라 꺾어야 하는 경쟁자가 되어 있는 지금은 분명 잘못되었다. 기성세대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무슨 짓을 하든 묻지 않고 일류대학만 가면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준 부모세대에게 잘못이 있다. ‘내 새끼만은 이겨야 한다’는 이기심이 내 자식 뿐만 아니라 남의 자식까지 죽이고 있다. 처진 어깨를 펴고, 흐린 눈동자가 번뜩이게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그렇다, 놀 수 있게 멍석부터 깔아주고 그래도 못 놀면 노는 방법 알려줘야 한다. 눈알 번뜩이며 세상을 바꾸는 대열에 함께 하는 꿈은 정녕 꿈으로만 남아 있지 않는 현실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