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이건희 친위 비밀경찰…최고 출세의 길

녹색세상 2008. 1. 16. 13:42
 

김용철 변호사가 ‘관리 담당 현황’ 보관... 삼성 “그런 문서 만들 필요없었다” 부인

 

 


삼성그룹이 각 계열사 핵심임원 68인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뜻을 각 계열사에 전파하며 ‘관리손익’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계열사 사장들까지도 감시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의혹 특검’이 공식 수사에 착수하기 이틀 전인 8일 오전 서울시내 한 찻집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삼성그룹 28개 계열사 총 68인의 이름과 연락처, 직함과 보직 등이 담긴 ‘관리담당 현황’ 문서를 직접 전달했다. 오마이뉴스는 김 변호사가 건넨 ‘관리담당 현황’ 문서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이 명단은 2004년 8월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최근까지 김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이 문서는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측은  “관리담당 현황 문서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면서 사실상 문서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문건을 지난해 12월 이미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특본)에 전달한 바 있다. 언론들도 지난해 12월 1일 김용철 변호사가 검찰 특본 측에 비자금과 관련된 삼성 관계자들의 명단이 적힌 메모를 제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언론은 당시 보도를 통해 김 변호사가 제출할 명단이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삼성 내부자 명단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와 관련, “특본 측에 이 명단을 제출할 당시 ‘이들에 대해 모두 출국금지 조처하고 소환조사를 즉각 벌어야 한다’는 의견을 검찰 측에 전달했지만 사실상 검찰 특본은 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미 검찰에 제출한 명단을 언론에 다시 전달한 것은 삼성 특검 수사가 시간에 쫓긴다는 명분을 걸고 수사를 대충 마무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압박카드로 풀이된다. 이 명단이 알려짐에 따라 향후 삼성 특검이 이들에 대해 적극적인 소환조사에 나서게 될지 주목된다. 

 

 ▲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건물 앞에 내걸린 삼성그룹 깃발.



의혹 1, 비자금 조성 및 관리의 핵심 고리는 누구?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여기에 거론된 인물들이 삼성을 움직이는 핵심”이라며 “이들이 계열사별 비자금 조성 및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전략기획실은 매년 초 전년도 경영성과 수치에 따라 비자금 전체 계획을 세우고 계열사별로 할당한다”며 “영업실적에 따라 비자금을 만들기 어려운 회사도 있지만 만들라고 지시하면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 내부에서 당해년도 비자금 조성계획을 실무적으로 수립하는 핵심은 전용배 삼성 전략기획실 상무”라며 “과거 그 자리를 거쳐 간 사람들은 고 박재중 전무→최광해 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부사장→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배호원 삼성증권 사장→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라고 전했다. 삼성그룹에서 퇴직한 고위관계자도 본인의 재직 시절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목격한 후일담을 전하며 주로 어떤 비목들이 비자금 조성의 창구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재직 당시 내가 직접 목격한 사건이다. 한 계열사는 의상실 영수증까지도 비자금을 만드는 데 썼다. 의상실 영수증을 '거래처 접대비'나 '회의비'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추후 세무조사에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 해당되는 금액만큼 벌금을 낸다. 비자금을 만드는 주요 비목은 거래처 접대비ㆍ회의비ㆍ복리후생비 등이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경관차’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경관차를 풀어 쓰면 ‘경리관리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기업회계의 손익에 관계없이 실질손익을 경관차로 따진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한 계열사에서 매출채권의 5%가 부실로 드러나면 관리 손익상으로는 기업회계와 무관하게 손실로 처리해 사장단 및 임원 평가에 반영한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비자금 조성에 직접 간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삼성BP화학의 주식지분율을 보면, 영국 BP(British Petroleum)사가 51%를 취득해놓은 상태다. 또 삼성석유화학의 경우에도 발행주식 총수의 47.4%는 삼성그룹 내 관련회사들이 소유하고 있지만, 반대로 BP Amoco Chemical Company가 47.4%의 주식을 갖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50% 수준의 주식지분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회사 재무나 회계담당 인사가 직접 회사에 파견돼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비자금을 만들 수 없다”며 “영국 BP사의 재무담당이 있는 상황에서 비자금을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한 대형 분식회계로 인한 경영부실로 비자금을 만들지 못하는 계열사도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삼성중공업의 경우에는 분식이 너무 심해서 실제로 비자금 마련에서 제외되었다”며 “현재는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익법인에 해당되는 삼성문화재단이나 삼성의료원, 삼성경제연구원 등도 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서는 제외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구조본)이 파견하는 관리담당 임원은 삼성그룹 핵심으로부터 선택받은 소수”라며 “이들은 행위에 비해 과도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룹 전체를 관장하는 실세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그룹에서 실세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대개 경리와 재무파트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M2(manager1(차장), manager2(부장))급 부장부터는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충직하며 보안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을 선별해 삼성그룹 내부에서 최고의 출세 코스를 거치게 하는 방법으로 인재를 키운다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길러진 인물들이 삼성그룹 내부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사실상 실세로 활동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도맡아 처리한다고 했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할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이 10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 김현수)


비서실 재무팀 출신이거나 재무팀과 특별한 인맥이 있거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관계사 관리담당 현황’은 ‘관리의 삼성’ 관리인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일단 삼성그룹의 핵심은 이미 알려진 대로 전략기획실 임직원이다. 전략기획실 임직원이 되는 경로도 사실상 이 ‘관리인맥’에 잘 나타나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제공한 2004년 관리담당 현황을 토대로 오마이뉴스가 계열사 임원들의 전ㆍ현직 활동 흐름을 추적한 결과, 대부분 그룹 회장비서실이나 구조조정본부ㆍ전략기획실의 임원이나 실무라인을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계열사에만 속해 있었던 경우라면, 회사 규모에 따라 ‘경영지원팀, 경영지원실, 경영지원본부’에서 활동했다. 경우에 따라 경영기획팀(실)에 속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경영지원실’ 출신들로 압축할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도 ‘관리담당 현황’ 명단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삼성의 관리담당 임원의 특징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팀 출신이거나 ▲비서실 재무팀과 특별한 인맥이 있는 경우라는 것. 김 변호사는 “이들은 월 1회 이상 비서실(현 전략기획실)에 정기보고를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수시보고도 한다”고 밝혔다. 계열사 경영지원실은 사실상 그룹 전략기획실과 한 몸과 같은 조직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변호사는 “군대 보안사의 임무를 상징하는 표어로 ‘피지원부대에 대한 절대적 지원’이라는 말이 있다”며 “삼성그룹 회장비서실(현 전략기획실)의 관리담당 임원들이야말로 경영에 대한 절대적 감시를 한다”고 전했다. 관리담당 임원들의 핵심역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영진 감시 및 이상 징후 보고라는 것. 특히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은 각 계열사의 관리 손익을 담당한다는 차원에서 계열사 사장들의 활동을 파악하게 되는데, 여기서 관리손익이 뜻하는 바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삼성그룹 퇴직임원은 “관리의 삼성에서 관리는 매니지먼트를 뜻하지 않는다”며 “삼성 내부에서는 기업회계(세무회계)상 손익관계를 중요하게 따지지 않고 실질손익 즉 ‘관리손익’에 따라 임원을 평가한다”고 전했다. 비자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많이 잘 만들었느냐를 기준으로 관리손익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룹 전략기획실이 계열사 사장들을 평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략기획실이 각사로 파견한 ‘관리담당’ 임직원들은 해당 계열사 사장보다 우위에 서는 권한이 생기는 셈이다.

 

의혹 2, 계열사 경영진도 감시하는 삼성의 비밀경찰?


비자금을 만들지 않는 계열사임에도 관리담당에 포함하는 이유는 뭘까?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내부에서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 못지않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비서실의 뜻을 각사에 전파하는 활동도 중요한 것”이라며 “비자금을 만들지 못하는 계열사들은 회장과 비서실의 뜻을 각사에 전파하는 역할을 중요한 활동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의 말이다.

 

“H/M 30%. 이 말은 각사 임직원 가운데 희망퇴직을 30% 받으라는 뜻이다. 이 내용이 각사로 전파되면 계열사는 대상자 명단을 만든다. 그런 다음 대상자와 가까운 선배나 상사를 통해 '퇴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인사'라인을 동원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설득에 가장 부작용이 없는 사람들을 내세운다.”

 

실제 삼성그룹은 지난해 전체 7,000명의 감원계획을 세우고 추진했으나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대외적인 파문이 인 상황에서 굳이 내부에 또 다른 문제를 만들 필요 없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는 소위 아름다운 퇴장이 없다”며 “십 수년 씩 일한 직장을 그만둘 때는 아무도 말이 없고, 퇴임식도 없으며, 조용히 짐을 싸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최고의 대우를 받는 직장이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삼성은 참 쓸쓸하고 서글픈 직장이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심지어 회사에서 해고해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경우에는 7년 전 자료를 찾아 해고하는 경우도 봤다”며 “한 계열사 간부사원이었는데, 3만원 짜리 취소된 카드 전표를 경비 처리했다는 이유를 찾아내 7년 만에 횡령 혐의로 징계해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임원은 정리하기 쉽지만 부장급들은 쉽지 않다”며 “지각, 조퇴, 결근은 절대 없지만 무능하다거나 일은 잘하는데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사람 등등의 경우에는 해고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의혹 3, 이건희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뜻을 각사에 전파

 

김 변호사는 “각사 M2급 부장부터는 전략기획실이 직접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며 “2계급 정도 특진하면 임원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주요 관리대상으로 삼는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계열사에서 활동했다 해도 비서실을 거쳐야 임원이 되기 쉽다”며 “영업만으로 사장이 된 최지성, 이기태씨나 세계적인 기술자 황창규씨는 정말 실력이 좋아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임원이 된 경우이지만, 삼성의 파워집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략기획실이나 경영지원실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삼성에서 고위직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한 번은 전략기획실을 거치기 마련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삼성그룹이 이처럼 조직운영을 하는 것과 관련해 김 변호사는 “사실상 내부자 매수행위”라고 비판하고 “이 사람들이 삼성의 진급라인이며 사실상 삼성의 비밀경찰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19년간 삼성전자에 몸담았다가 퇴직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저자 김병윤씨도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각 계열사의 경영지원실은 재무와 인사ㆍ회계ㆍ총무 등을 담당하는 회사의 실세들”이라며 “실제 회사에서 필요한 자금을 만드는 역할을 관리담당 임원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삼성전자의 경우 최도석 사장은 윤종용 부회장이 있음에도 전체 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그룹 내부에서 파워가 막강한 사람이었다”며 “삼성그룹 내 마케팅 라인의 최고 전략회의인 전략마케팅 팀장회의에서도 최 사장이 최고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출신들로 계열사 ‘경영지원실’에 파견된 사람들은 대부분 각 회사 안에서 의사결정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계열사 사장도 그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전략기획실에서 파견한 각 사 경영지원실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해당 계열사 사장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며 “사실상 사장도 전략기획실 출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전했다.

 

전략기획실 파견 ‘경영지원실’ 임원들은 계열사 사장까지도 평가하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해당 계열사 사장에 대한 정보가 모두 이들을 통해 전략기획실로 취합되기 때문에 이들은 각 회사 안에서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파트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우리 회사에서는 관리담당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는다”며 “홍보나 기획, 회계, 인사 등 분야별 계열사 담당 임원모임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관리담당'로 통칭할만한 모임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했다는 관리담당 현황 같은 문서를 굳이 인쇄물로 만들 필요없다”며 “사내 인트라넷에 들어가서 이름만 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집 주소까지 다 뜨는데 뭐 하러 그런 문서를 만들어 보관하겠느냐”고 반론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계열사 전체 임원은 1500명 정도”라며, 이 가운데 관리담당 임원으로 분류할만한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및 관리의 실무핵심이라고 지목한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 등에게 반론을 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장윤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