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몰아닥친 핵폭탄, 외환위기
정확히 10년 전 대한민국은 외환 보유고 부족으로 경제 대란을 맞이했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가 부족해 대 혼란을 가져온 ‘국가부도’ 사태라는 핵폭탄을 맞았다. 미국이 대주주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달러를 빌리는 대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각종 정책을 만들어 갔다. 한국담당 직원은 아예 대한민국 정부청사에 책을 들여 놓고 모든 것을 자신들의 입 맛 대로 주물렀다. 철저하게 미국식으로 세뇌되어 있는 관료들은 IMF의 요구를 넘어 알아서 내어주기까지 했다.
그 여파로 국내금융시장은 외국 투기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영원할 줄 알았던 굴지의 대기업들이 줄지어 쓰러졌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성실하게 일만 해 온 많은 장인들을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 몰았고 노숙자는 급증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조건으로 국가기간산업과 엄청난 수익 남기던 알짜 기업의 주식은 절반 넘게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고 말았다.
▲ 외환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김영삼 정권은 동남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올지고 모른다는 경고에 ‘씰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일류라고 자처하던 서울대 출신의 경제학자와 관료들은 예측조차 못했다. 예측을 못했으니 대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일부 소장학자들의 ‘외환위기 경고’는 공허한 메이라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유동성 위기가 오니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국내 기업 대부분은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이상하리만치 건설현장의 임금 지급이 늦어지고 임금이 묶이는 등 징조가 곳곳에 보이긴 했으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보니 짐작조차 못했다.
IMF구제금융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의 차갑기 그지없는 칼바람은 글을 쓰는 나도 맞았지만 하청업자들의 술자리까지 피해 다니며 성실히 일한 우리 동생에게도 오고 말았다. 그 후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생각조차 하기 싫다. 곳곳에 부도가 나니 일자리가 없어 충남 대천 바닷가까지 가서 한 겨울에 바닷바람 맞으며 하루하루를 넘기다 눈언저리에 흉터도 얻었다. 그 다음해인 99년 여러 곳을 헤매다 겨우 얻은 일자리, 그것도 잠시 입사 한지 한 달 조금 넘은 5월 13일 11시 20분 무렴 산재사고를 당했다. 안전에 대해 누구보다 철저함에도 예고편 없이 오고 말았다. 압착(끼임)사고였음에도 손가락이 절단되지 않았고 혈관 손상도 없었고, 아슬 하게 관절을 피해 집도 의사 말처럼 ‘사고치고는 운 좋은 셈’이었으나 치료 과정에 고생한 것과 그 후 연거푸 일어난 사고를 생각하면 끔찍해 떠 올리는 것 자체가 싫다.
아이들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수많은 날, 어린 녀석이 밤늦게 혼자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찢어져 생각할 때 마다 많이도 울었다. 밤이면 ‘엄마’를 찾으며 울던 딸의 울음소리는 심장을 후벼 파는 것이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자식들만은 지켜야 한다”며 수 없이 다짐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련 때문인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떠들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라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의 융단폭격으로 민중들의 삶은 그래도 ‘하면 되더라’던 예전과는 영 딴판인 절망의 나락으로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다. 겉만 화려한 경제지표는 벼랑 끝에 내몰린 민중들의 삶과는 먼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이전 5명이 보던 업무를 4명으로 줄이더니 이젠 3명이 하도록 갈수록 업무량이 늘어나 노동 강도는 높아만 간다. 사업주의 은폐에다 불승인이 많은 산재사고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 사이에 사무노동자들의 업무 과중으로 인한 ‘산재요양’이 2배나 증가했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통계자료는 노동 현실이 어떠한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규직이라고 고용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의 피눈물 나는 절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며 분신한 건설노동자 정해진 열사의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런 죽음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모르는 나라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살고 있다.
갈수록 어려워만 가는 민중들의 삶....
신용불량자(금융피해자) 266만명, 가계 부채는 700조원에 달해 가구당 4천5백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게 이 땅 민중들의 현실이다. 실직자가 절반 넘게 차지하는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보다 더 많은 하루 36명에 이르고 있어 선진국 모임이라는 OECD 가입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는 아직도 대한민국 차지임은 두 말할 나위없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와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농산물 가격으로 인해 농민들의 한숨은 늘어만 가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없어 나온 노점상들은 거리에서 마저 내 쫓기는 신세다. 건설자본이 배후 조종하는 무분별한 재개발로 도시빈민들은 겨울철 강제 철거도 칼바람에 내몰리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겨울을 보내야 하는 땅, 바로 외환위기 10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현 모습이다. 30:70의 사회에서 20:80으로 바뀌더니 이젠 10:90의 사회로 변해 ‘중산층’이란 말이 사라진 사회로 고착화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빌린 돈 갚는답시고 국가기간산업까지 다 팔아먹은 김대중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은 ‘지난 10년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당당하게 일어선 대한민국을 만든 시기’라며 자화자찬에 빠져 있지만 이를 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허탈과 분노만 치밀어 오를 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경제를 살리겠다는 보수 수구 세력들의 ‘입에 발린 소리’는 대한민국 부정부패 ‘종합선물세트’인 삼성과 같은 ‘재벌만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임은 우리 청소년들도 안다. 비정규직 해결과 민중생존권 보장은 커녕 그들만의 ‘법과 원칙’을 들이밀어 벼랑 끝에 내몰린 민중들을 더 포악하게 밀어 붙일 것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경제연구소, 대안연대회의 등 10개 진보진영 연구단체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외환위기 10년 한국경제 회고와 전망’ 심포지엄을 열었다.
지난 10년 동안 통계상으로 경제가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지갑을 채우는 성장이냐는 것이다. 소수는 내키는 대로 무한정 긁어도 되는 카드가 있고, 많은 국민들은 외식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경제성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경제, 민중들의 지갑이 차고 통장에 돈이 쌓이는 성장이어야 한다. ‘민중을 위한 경제 성장’을 하려면 부자들의 세상을 민중들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극소수 부자들의 배만 가득 채울 뿐 돌아오는 것은 대다수의 ‘빈곤과 절망’ 뿐이라는 것이 IMF구제금융 10년 역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다시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에 응하라’며 분신하는 노동자들이 없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며 칼바람 맞으며 철탑 위에서 농성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진료비 70만원 중 ‘40만원이 특진비’인 엉터리 의료 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를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모든 진료에 보험급여 적용을 해 비급여진료를 못해 병을 키우는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하고, 아동과 장애인, 노인들부터 무상진료를 실시하고 모든 국민 무상진료로 가야 정상적인 사회다.
재단전입금 한 푼 없는 사립중ㆍ고교를 공립으로 바꾸고, 정부지원 97퍼센트 넘는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하고, 대학 등록금 동결이 아닌 당장 반 토막 내야한다. 학벌사회의 주범인 ‘학력차별’을 폐지하고, 국립대 통합을 시작으로 대학평준화를 실시해야 사교육비가 사라진다. 교육과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해방 후 지난 60여 년간 너무 많은 세월을 민중들은 수탈에 시달렸다. 더 이상 시달려서는 안 된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 민중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세상, 교육비와 병원비 걱정 없고 집 걱정 하지 않는 세상에 살 권리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보수 세력에게 맡기면 그 희망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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