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골프채 빌리러 온 의대교수

녹색세상 2007. 11. 24. 16:31

 

늘 이물질이 걸려 있는 것처럼 불편하던 목이 시원하고 좋아진 느낌이다. 목소리도 맑아진 것 같고. 확인도 해 볼 겸 이비인후과 주치 의사인 후배를 찾아갔다. 병원이 있는 건물 주차장에는 건겅보험료 250만원 넘게 내는 의사가 타고 다닌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구형 ‘소나타3’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잠시 타고 다니던 배기량 좀 많은 차는 출근거리가 먼 자기 아내에게 접수 당하고 ‘차는 굴러가면 된다’며 그냥 타고 다닌다. 예나지금이나 겉치레와 허영과는 거리 먼 후배의 생활습관이 참 마음에 들어 집에서 떨어진 곳임에도 얼굴도 볼 겸 오가곤 한다.


대기 환자들이 많아 접수하고 원장실로 갔다. 원장실에 들어서니 한 동안 안 보이던 평면도 아닌 구형 컴퓨터 모니터가 보였다. 거의 본 적이 없는 골프채와 같이. ‘모니터라도 좀 바꾸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후배 특유의 ‘손 봐서 쓸 만하니 안 버리고’ 다시 갖다 놓은 알뜰함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목을 보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며 건조한 계절이나 수시로 물로 목만 축여주면 괜찮다고 한다. ‘복십호흡’으로 몸속의 노폐물을 빼낸 효과가 나타난 것 같다. 못 보던 골프채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사연인 즉슨 모 국립대병원 정형외과에 어깨 수술의 도사인 후배가 1년간 미국으로 연구차 가면서 ‘빌려 달라’고 한 모양이다.

   

 

후배가 간 곳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정형외과로 유명한 병원이라고 한다. 그 동네에 집도 없고, 다른 아무 것도 없고 컴퓨터로 유명한 IBM사와 그 병원뿐인데 골프장뿐이라 혹시나 해서 빌리러 온 것이다. “골프채 없는 의대교수도 있나?”고 했더니 “수술하는데 푹 빠져 골프 치러 갈 시간이 없을 사람들 그 병원에 많습니다”기에 한 바탕 웃었다. 내가 아는 골프채 없는 의사는 환경 운동하는 선배 말고는 처음인 것 같다. 어깨 수술의 전문가인 후배는 장사와는 거리가 멀고 오직 연구하고 사람이 좋아 학생들 가르치고 수술에 관심이 있는 전형적인 의대교수다.


술만 먹으면 심장이 이상해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다 수시로 운동을 해 장 시간의 수술에도 끄떡없는 체력의 소유자다. 평소 집인 성서에서 삼덕동에 있는 병원까지 걸어서 출근할 정도로 몸 관리도 철저하다. 한 밤 중에 병원에서 전화와도 달려갈 정도니 어떤 의사인지 상상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수술환자가 있음에도 즉각 연락 안 하고 방치하면 당직 수련의는 혼쭐난다. 군의관 제대할 무렵 서울삼성병원으로부터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하니 일찍이 그 분야에서 소문났다.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친절하기 그지없다.


오래도록 애 먹이는 어깨 검사를 하러 갔는데 내 앞에 치료 받고 나오는 노인이 있어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봤다. 대학병원까지 찾아온 노인들은 ‘교수님의 한 마디’에 귀가 쫑긋하기 마련 아닌가. 발걸음 돌리는 게 아쉬워 하나라도 더 물어 보는 그 분에게 두 손을 꼭 잡으면서 ‘할머니, 연세 들어 이 정도 안 아픈 사람 없으니 걱정 마시라’며 집안 어른을 대하듯 하는 모습에 내가 감동을 먹었다. 오래도록 알고 아끼는 내 후배가 그러니 더 보기 좋았고 ‘역시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뭐를 하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여기에다 자기 분야인 의료 구조와 세상에 대한 관점만 좀 있으면 환상적일 텐데 그게 안 되어 좀 아쉽다. 골프채 없어 빌리러 온 의대교수는 아마 이 후배 말고 또 있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