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뉴코아노조 천막 찢은 명동성당

녹색세상 2007. 11. 22. 19:19
 

노동자 외면은 예수에 대한 외면


  명동성당에 장기파업 투쟁 중인 뉴코아 노동자들의 천막이 친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명동성당측에 의해 뜯겼다. 천막 안에 여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정없이 찢었다. 그들에게  ‘약자를 보호하라’는 예수의 말은 ‘소귀에 경 읽기’란 속담은 너무 점잖은 표현이다. 기독교신자로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뿐이다. ‘죵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칼 막스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서 어디에도 없는 ‘자기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수시로 찌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마약중독 상태의 기독교(신구교)가 너무 밉고 정말 싫다.


  신부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우리는 갈 데가 없습니다. 신부님, 제발 버리지 마십시오’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무릎까지 꿇고 매달렸건만 ‘나가라. 철거하겠다’는 북풍한설보다 매정한 말만 할 뿐이다. 그것도 남의 아픔을 위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던 그 아가리로. 그렇다고 삼성과 싸우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면 ‘미안하다’는 말 밖에 더 들을 게 없다. 자신들이 근무하는 성당의 마당은 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성직이라 구별해서 안 되지만) 성직자라 자타가 부르는 자들이라 부끄럽기는 한지 ‘수배 중인 사람은 노무현이 와도 보호해 주겠다. 나머지는 나가라’고 한 애당초 주임신부의 말과는 달리 수배자들 마저 나가라며 벼랑 끝에 내몰린 뉴코아 노동자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비수를 꽂았다. 명동성당의 신부 입이 앞뒤가 다르게 수배 중인 사람마저 그냥 나가라는 것은 약자를 발로 차 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가?

 

  보호를 받으러 간 게 아니라 이랜드악질자본에 맞서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노동자들에게 완전 동문서답이 아니라 간접살인을 한다. ‘나가라’는 그 말에 내가 눈물이 나는데 당사자인 뉴코아노동자들은 어떨지..... 굶주리고 병든 사람, 약자를 도와주라‘고 적힌 성서구절은 무엇이란 말인지 그 사제에게 묻고 싶다. ‘갈 곳이 없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약자들에게 예수도 ’나가라‘고 했는지도 같이 묻고 싶다. 

 

▲21일 오전 11시 명동성단 앞에서 뉴코아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갖으려 했으나 명동성당측에서 시설보호 요청을 하여 경찰들이 명동성당 입구에서 부터 출입을 통제하여 실랑이를 벌렸고 결국 명동 성당 안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천주교의 악랄한 노동조합 파괴


  몇 년 전  천주교 자본이(?) 운영하는 카톨릭중앙의료원 총 파업 때 경영진은 ‘공권력 투입’이란 짓을 자행했다. 입만 벌리면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떠든 천주교서울대교구는 노동자들의 절박하고 간절한 호소에 ‘경찰병력’ 요청으로 시원하게(?) 응답을 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신생아실과 유아병동 같은 곳에 기본 인력을 배치한 인도적인 파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병력이 병원 내로 들어오자 노동자들은 병원 내 성당으로 피신했지만 경찰은 담당 신부가 서명한 영장을 들이대며 끌어냈다. 천주교는 자신의 얼굴에 제 손으로 똥칠을 한 명예로운(?) 짓을 자행했다. 그 신부는 명동성당과 같은 서울대교구 소속이다. 이게 종교의 모습이고, 한국 기독교(신구교)의 본질이다.


  천주교나 개신교 재단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봐라? 정말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의 말’을 전하려는 게 맞는지. 등록금 인상은 거의 상위를 기록하지 꼴찌는 아니었다. 재단전입금이 얼마인지 묻지도 마라. 거지 동냥도 그렇게는 안 한다. 그들이 운영하는 병원의 특진비 실태와 진료비 과잉 청구를 보면 얼마나 돈에 환장한 집단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진료비 과잉 청구에다 이중부담 지적을 당하고도 시정은 커녕 오히려 ‘행정소송’을 들먹이는 그들에게 ‘투명경영’은 너무나 먼 당신이다. 문국현 보다 더 못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 집단의 비리에 떠드는 신부가 없다. 설치면 압력이 들어가거나 보좌 신부와 수녀를 안 보래 괴롭히는 치사한 짓도 한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가르침과는 영 딴 판이다.


예수를 철저히 배반한 명동성당


  예수는 분명히 말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라’고. 그런데 명동성당은 ‘갈 곳이 없다’고 울부짖는 노동자들에게 ‘나가라’고 단칼에 잘라 버렸다.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마라, 약한 자의 짐을 져 주라’고 바울은 가르쳤지 ‘내 쫓으라’는 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성서어디에도 없다. 이 추운 날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에서 ‘제발 쫓아내지는 마라’고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한 노동자들을 외면한 게 아니라 무참히 짓밟았다.


  천주교,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겼고 예수를 배반했다. 바울은 백척간두에 처한 약자를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하라’고 했지 ‘차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이웃의 ‘잘못마저 덮어주고 사랑하라’고 수 없이 말하고 가르쳤지 ‘시끄러우니 내 보내고 천막을 찢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한국천주교의 상징인 명동성당은 바울을 배신했다. 아니, 예수와 하느님을 배반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을 걷어 찬 것은 바로 하느님을 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