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허점을 정확히 찌른 이회창?

녹색세상 2007. 11. 10. 00:23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회창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계은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불확실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바로잡기, 좌파정권 10년 종식, 법 기강 세우기” 등을 들었다. 하지만 대선 출마의 명분으로 보기에는 어느 모로 보아도 설득력이 별로 없다. 스스로의 원칙을 깨면서 시대에 역행하는 이유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궁색하고 진부한 논리로 대선 출마를 감행한 것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추정을 낳는다. 무엇을 믿는 것일까. 그의 출마는 “대선승리ㆍ대선패배ㆍ중도사퇴” 중 어느 하나의 결과를 맞게 되어있다.


  그가 완주하여 승리한다는 것을 목표로 무리한 선택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에게 대선승리 이외는 안 나온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다 얻거나 잃을 수 있는 모험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모험을 감행했을까?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해 박빙의 3자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 BBK 김경준 사건의 여파로 이명박 후보의 낙마 가능성 기대, 박근혜 측과 모종의 결탁을 통한 지지 유도”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맞아떨어져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박근혜 측은 전략적으로 중립을 지킬 가능성이 더 크다.

 

▲ 이회창 대선후보가 2002년 5월 28일 이명박 서울시장후보와 함께 서울 명동에서 6.13 지방선거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이회창의 대선승리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크게는 정계의 지각 대변동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의 물꼬를 급우회전 시킨다. 작게는 그가 말한 ‘구국의 결단’이 명분을 얻게 되고, 그에 대한 비난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다. 한마디로 ‘창의 화려한 부활’이다. 그러므로 그는 ‘패배로 잃는 것은 개인의 명예지만. 승리로 얻는 것은 천하’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에 회한이 많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걸 수 있는 모험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회창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진보적인 미래가치에 역행한다. 주장하는 “좌파정권 10년 종식,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바로잡기, 법 기강 세우기”는 시대와 현실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자’는 꼴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사회, 정치판의 허점을 정확히 찌르며 모험을 걸었다. 흘러간 정치인이 다시 등장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 씁쓰레하다. 현실 정치에 다시 등장해 다음 시대를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시대의 급박한 요청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수구로의 회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을까?


  이회창의 출마를 가능하게 한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이 주는 의미를 ‘발전의 과정’이라고 넘기에는 그 뒷맛이 너무 쓰다. 진보든 보수든 자기 논리에만 취해 있었지, 한발 앞으로 나가려는 창의적인 노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이회창이 출마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현 정치권의 어리석음도 그보다 결코 낫지 않다. 이렇게 부실한 논리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허점을 파고드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충분한 계산을 했음이 확실하다. 그의 모험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구시대 정치인의 모험이 통한다면 우리 사회는 허점투성이임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이러다가 돈키호테의 도전에 무너지는 ‘바보풍차’가 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별로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