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대권 삼수생 딱지 붙인 이회창
7일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결국 스스로 ‘대권 삼수생’ 딱지를 붙이는 ‘고뇌에 찬 결단’을 하고야 말았다. 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두 번의 낙마를 거쳐 이날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내민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얼굴표정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탈고에 탈고를 거듭한 듯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출마에 임하는 원고내용은 ‘구국의 결단’이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이회창의 고심도 묻어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이회창의 결단을 어렵게 만든 것은 두 번의 실패에서 배운 ‘이회창 학습효과’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첫 번 째 도전이었던 97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는 ‘대쪽판사’라는 이미지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불과 46세의 나이로 대법관에 임용된 이 전 총재에게 대쪽판사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아주 원칙적인 후보로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가 원칙 앞에 한 방에 무너진 것은 ‘아들 병역비리 파문’이었다. 이회창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의 병역문제로 지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후보로 교체론이 고개를 쳐들었다.
▲ ‘창’의 눈물과 미소.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한 뒤 2002년 12월 20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가 7일 오전 제17대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대선출마를 선언 한 뒤 박정희 묘소를 참배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그러나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은 시련의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다시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 4대 의혹으로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고, 부친의 친일의혹과 박정희 정권 당시 ‘5.16쿠데파 재판부 배석판사’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선고 등의 악재가 겹쳤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바람으로 노무현 바람이 일며 극적으로 이뤄진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에 결국 무릎을 꿇고야 만다. 이런 상황에서 이회창은 2002년 12월 20일 ‘정계은퇴 선언’을 한다. 정계를 떠났지만, 그에게는 항상 ‘차떼기’라는 커다란 의혹의 딱지가 따라 붙었다.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무협의 처리를 받았지만 그에게 의혹을 보내는 시선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런 그가 2007년 11월 7일 출사표를 던졌다. 4년 11개월만이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단암빌딩 밖에서는 창사랑 회원 등 지지자 200여명이 구국의 결단을 내린 이회창을 연호했다.
벌집 쑤셔놓은 뒤집힌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강재섭 대표는 “대권병. 썩은 단지”라모 맹비난 하며 “대선잔금 문제 확인 후 공개”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회창이 7일 오후 끝내 탈당과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등 극도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당 내부에선 ‘제2의 이인제’ ‘악덕 장의사’ ‘대쪽이 아닌 갈대’ ‘기회주의자’ ‘새치기’ ‘대권병에 걸린 환자’ ‘쿠데타적 발상’ 등의 격앙된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당 지도부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며 즉각 공세로 전환했다. 지도부는 그러면서도 “지금이라도 잘못된 결정을 철회하고 즉각 돌아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교체해 달라는 국민적 열망을 깨뜨리는데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는 역사의 순리가 아니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2번이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린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가세했다. 전재희 최고위원은 “이 전 총재가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알고 온 국민이 다 아는데 어째 그 분만 모르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전 총재가 무슨 검증을 받았나. 빈 마음으로 면벽수행을 하면서 생각하면 내 말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경원 대변인은 즉각정인 논평을 내고 “1년 4개월 동안 브리핑을 하면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면서 “이 전 총재의 대선출마는 엄연히 경선결과에 불복한 것이자 정당정치와 민주적 절차를 훼손한 불법, 변칙 행위”라고 주장했다. 나 대변인은 “왜 경선불복으로 제2의 이인제가 되려고 하느냐, 은퇴번복으로 왜 제2의 김대중이 되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당 중심모임을 이끌고 있는 맹형규 의원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무참히 짓밟은 반민주적 행태”라면서 “이 전 총재는 후세에게 어떤 논리로 민주주의의 절차와 정도의 원칙을 설명할지 이에 대한 답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계동 의원은 “마치 동지가 아플 때 돈을 벌려고 빨리 죽기를 바라며 서성이는 장의사와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이해만 계산한 정상배, 이 전 총재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고, 김명주 의원은 “대한민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몇 십 년 뒤로 되돌리는 전형적인 쿠데타 발상이자 범여권의 정치공작에 놀아나 한나라당을 세 번 죽이는 꼴”이라고 성토했다.
사무처의 당직자들조차 성명을 내고 “이 전 총재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당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게 뭐가 있느냐”면서 “이 전 총재는 결국 원칙을 뒤집는 갈대임이 입증됐다. 우리는 이명박 후보를 중심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앞으로 이 전 총재 출마의 부당성을 알리는 특별당보를 제작하는 등 대국민 홍보전에 나서기로 했다. 당장 강 대표가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 전 총재의 출마를 신랄하게 비판키로 한 동시에 고문단 중심의 항의방문단 파견, 당원협의회(옛 지구당) 및 시ㆍ도 단위별 기자회견과 규탄대회 개최 등을 추진키로 할 정도로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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