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아이취급을 당하는 청년들

녹색세상 2007. 10. 28. 16:37
 

  만 19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성인이라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고, 당사자의 판단에 의해 부동산 매매와 같은 법적인 확인이 필요한 상거래를 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고등학교 졸업 나이가 되면 성인 대접을 받았다. 다니던 교회 어른들은 ‘이 선생, 윤 선생’으로 불러 주었고, 은사님들도 자식뻘 되는 제자임에도 ‘자네’라고 부르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20대 중반이 넘은 성인들을 청소년 대하듯 한다. 30대 이상도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사회 전반적인 영향 탓인지 모르겠으나 30대 중반을 넘어선 후배들에게 ‘자네’란 호칭을 하면 왠지 어색해 한다. 대접받은 대로 하는 것 뿐인데.....


  초등학교 주위에 가 보면 자식을 모시러 온 엄마들로 혼잡을 이룬다. 걸어서 20분 도 안 되는 거리건만 등하교 길에 아이를 모시고, 점수 몇 점 때문에 난리가 나곤 한다. 중고등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 큰 자식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 같이 가고, 처방전 들고 약국까지 가는 것은 기본이다. 자식들이 스스로 해 볼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입시정보는 엄마들이 수집하고, 진로도 아이들 스스로 판단할 겨를이 없다. 이러한 엄마들의 극성 탓인지 중고생 학력평가는 세계 3위로 매우 높다. 자기 논리와 철학이 없음은 물론이지만 문제 푸는 기술만 익힐 뿐 책을 읽고 사고의 폭을 넓힐 기회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정보 검색이 가능한 인터넷은 새로운 것을 스스로 해 볼 기회를 점점 빼앗아 가고 있다.

 

△학생당원 100여 명이 펼친 권영길 후보당선 축하공연 ⓒ진보정치 이치열 기자

 

  이런 환경에서 자라 대학을 가니 가치관을 세울 기회가 있을리 만무하다. 성인이 된 자식의 학점 관리는 당사자가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몫이 된지 이미 오래다. 시험 치고 나면 담당 교수에게 어머니들이 전화를 해 ‘학점 정정’해 달라고 하니 홀로서기를 해 볼 겨를이 있을리 만무하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 고민했던 30대 후반 이상의 세대로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서도 막상 자기 자식은 이렇게 ‘아이 취급’을 하고 있다. 당시 20대 중후반이면 조직의 실무담당자였고, 젊은 열정 하나로 뛰었는데 요즘 그런 기대를 한다면 아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청년들을 아이로 만든 것은 부모들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청소년과 20대들의 부모인 유신세대와 80년대 세대들이 의존적이 자식으로 키웠다. 어쩌면 나도 그 대열에 한 몫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카들을 대할 때 어린 시절만 떠 올리고 성인이 된 현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 봐야겠다. 당의 학생위원장을 만나면 조직의 대표자로 대하는 것부터 당장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