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희망을 잊어버린 사람들.....

녹색세상 2007. 10. 13. 15:11
 

  작년부터 무슨 일이 이리도 꼬이는지 내 형편에 맞는 현장이 왔다간 사라지고 해 차일피일 미루다 추석 얼마 전부터 용역사무실을 찾아갔다.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철거현장에 투입하는 건강한 어깨들이 모인 ‘경비용역’이 아닌 건설현장에 들어가 뒷일을 하는 것이다. 관리직에 있을 때 갑자기 인력이 필요할 경우 연락을 해 간혹 이용하긴 했으나 막상 내가 그 곳에 가려니 안량한 체면 때문에 주저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 되어 눈 질끈 감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전화를 위치를 찾아 갔다. 새벽에 잠시 열리는 인력시장과 비슷한 곳으로 하루 전 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연락이 와 다음 날 배치를 하는 게 조금 다르다고 보면 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들이라 일마치고 오면 바로 돈을 준다. 돈은 적지만 불특정한 업자들에게 그날그날 낙점 받는 것 보다는 일을 나갈 확률이 높아 매일 1만원씩이나 뜯기면서도 새벽마다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 별다른 기능이 없어 부른 곳에서 시키는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서생처럼 생긴 얼굴 탓에 ‘왕초보’로 취급하기에 솜씨를 보여줬더니 대하는 게 조금 달라졌다. 사무실이 임대아파트 주변이라 비교적 인력을 구하기 쉬운 편이긴 하나 날씨가 좋아 원하는 곳에 사람을 다 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좀 젊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서너 달 넘게 일을 해야 할 형편이면 용역에 나오지 말고 힘은 좀 들지만 임금도 높고 대우가 좋은 목수나 철근 쪽으로 알아보라’고 권하긴 하나 당장 앞이 급한 사람들인데다 그 날 그날 돈 받는 맛에 다른 곳을 찾아가지 못하고 몇 년씩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문제는 대다수의 현장에서 사람을 ‘돈으로 샀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며 대한다. 기능이 있는 목공이나 미장일은 자신들이 아쉬워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다시 얼굴 볼일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거의 ‘머슴취급’을 한다.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보니 그런 일에 익숙한 탓인지 ‘넌 떠들어라’며 하루를 때우는 게 몸에 익어 있다. 어떤 사람은 미장일을 하다 다쳐 제대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해 힘든 건설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해 단순히 청소나 하는 일을 하고, 잠시 돈 좀 만졌다고 도박이나 카지노에 빠져 돈 다 잃고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돈 더 줄테니 다른 곳에 가서 일하자’고 해도 젊은 사람들 일부 말고는 그냥 눌러 앉아 있을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의욕을 잃어버렸으니 희망이란 말조차 떠 올리기 힘든 나날을 보낸 그들이지만 ‘의욕 없는 인간들’이라고 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희망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 줬기 때문에 낙오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노숙으로 전락하는 순간 ‘삶이 추락하고 만다’며 노숙만은 막아야 한다는 쪽방상담소를 하는 친구의 말이 수시로 떠오른다.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이야 다행이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나이 많은 사람들의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리 만무한 현실을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아픈 사람에게 ‘너 왜 아프냐’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듯이 희망이란 말을 잊어버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희망을 가져라’며 한 마디 던지는 것은 어슬프기 그지없는 짓이다.